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연인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621
한자 -所望-戀人山
영어공식명칭 Yeoninsan Mountain, Where Love and Hope Come Tru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조종면|북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손승호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서 젊은 남녀의 애절한 사랑에 관한 전설을 간직한 연인산이 품은 이야기.

[개설]

연인산(戀人山)은 가평군의 중부에 자리하며, 가평읍 승안리·북면 백둔리·조종면 상판리의 3개 읍면이 만나는 경계부에 있는 해발고도 1,068m의 산이다. 이곳에는 이루지 못한 젊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후 이 산은 사람들의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뜻에서 ‘연인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름없는 산에서 연인산으로]

연인산은 본래 이 산의 북쪽에 자리한 명지산의 산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형성된 봉우리로, 특별한 이름을 가지지 않은 무명산이었다. 단지 연인산에서 밭을 일구며 살아온 화전민의 애환을 간직한 채 가시덤불이 무성한 산이었다.

연인산은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월출산[월출봉]’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산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우목봉’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또는 가평군에서 지정한 공식적인 이름은 없었다.

그러다가 1999년 3월 가평군 지명위원회에서 국민 공모를 통해 산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옛날 이곳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남녀의 이야기처럼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연인산’으로 지명을 확정하였다.

가평군에서는 연인산으로 이름을 확정한 후 봉우리, 능선, 고개 등의 이름도 새롭게 정했다. ‘연인산’’이라는 이름이 국가 지명으로 공식 확정된 시기는 가평군에서 지명을 정하고도 한참 뒤이다.

2017년 3월 23일 우리나라의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연인산’이라는 지명을 공식적으로 확정했으며,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산의 위치정보를 가평군 북면 백둔리로 고시했다.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연인산]

연인산 주변에는 여러 산줄기가 뻗어 있으며, 이들 능선은 우정능선, 연인능선, 장수능선, 소망능선, 청풍능선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연인산은 서울에서 자동차를 이용하면 2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으며, 경치가 아름답고 산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소들이 많다.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평가받는 비경은 용추계곡이다.

연인산의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이 ㄷ자 모양으로 용추계곡을 감싸고 있으며, 산의 정상부에서는 막힌 곳 없이 사방을 둘러볼 수 있다.

연인산의 북쪽 아재비고개 위로는 명지산화악산이 자리하고, 동쪽으로는 수덕산구나무산을 비롯하여 가평천 건너 북배산을 바라본다. 산의 남쪽으로는 용추계곡칼봉산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조종천을 사이에 두고 청계산운악산을 마주한다.

용추계곡은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아홉 구비의 그림 같은 경치를 만들었다는 데에서 생긴 이름이다. 연인산의 동남 사면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승안천 주변에 형성된 용추계곡을 시작으로 와룡추·무송암·탁령뇌·고실탄·일사대·추월담·청풍협·귀유연·농완개 등 빼어난 경치가 있으며, 이들은 ‘용추구곡’ 또는 ‘옥계구곡’으로 불리기도 한다. 용추계곡의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은 자연의 신비를 한층 높여준다.

연인산은 강수량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해서 산에는 여러 종류의 고산식물을 비롯하여, 얼레지·은방울·투구꽃 등 많은 야생화가 서식하고 있다. 또한 각 능선마다 원시림과 함께 잣나무·참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해발 700m 이상 되는 능선에는 키가 큰 철쭉이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다.

철쭉은 고지대로 올라 갈수록 색깔이 곱고 나무가 굵어진다. 철쭉 자생지는 등산객들이 이용하면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으며, 1999년부터 매년 철쭉이 만개하는 5월에 철쭉축제가 개최된다. 연인산은 자생하는 야생화 및 철쭉 군락의 생태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경기도 광주시의 남한산성에 이어 경기도에서 두 번째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화전민의 터전]

가평군 북부의 산지에는 화전민이 오래 전부터 정착해 살았다. 산의 경사도가 20° 내외인 사면의 토양이 비옥해서 지표면을 정리한 후 경작지로 활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화전민은 비교적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다른 산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돌과 바위가 많아지지만, 연인산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부엽토가 깔린 비옥한 토양이 많다. 따라서 연인산 자락에도 오래전부터 화전민이 거주했으며, 본격적으로 연인산 일대에 화전민이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6·25전쟁 중의 1.4후퇴 이후이다.

연인산6·25전쟁 당시 전쟁을 피해 들어온 화전민이 늘어나면서 이전부터 거주하던 토착 화전민, 전쟁 중의 피난 화전민, 그리고 산에 벌목공으로 들어온 노동자 가운데 정착한 화전민 등이 거주하는 장소가 되었다.

1960년대에는 연인산의 산자락에 300가구 이상의 화전민이 살았다고 한다. 화전민들은 산비탈에 조성된 밭에서 무와 배추 등의 채소를 재배하여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가평군의 화전민은 생활환경이 넉넉하지 못했으며, 자녀들 역시 가난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1965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전명숙씨와 당시 가평군 조종면의 유일한 대학 졸업자였던 양석주씨는 화전민의 자녀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가평군 상면 임초리에 한명중등성서학원(韓明中等聖書學園)을 세우고 마을의 교회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 70여 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이웃 마을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와 1966년에는 학생 수가 130명으로 늘었다. 이 지역에 주둔한 부대장의 도움으로 교실을 확충하여 부족한 교실 문제를 해결하였고 산골에 사는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72년부터 가평군에서 산림녹화사업이 실시되면서 화전민들은 다른 곳으로 모두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한 가구당 40만 원씩의 이주비를 받고 강제 이주 당하였다. 화전민들이 개간해 놓았던 밭은 낙엽송과 잣나무가 식재되면서 연인산 일대의 산지는 푸르른 숲으로 변모했다.

연인산 곳곳에 커다란 잣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은 대부분 과거에 화전민이 일구어 놓은 경작지였다. 지금도 용추계곡을 비롯하여 연인능선과 우정능선 등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과거에 화전민이 거주했던 옛 집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녀의 사랑을 품은 아홉 마지기의 전설]

연인산에는 산에 올라 남녀 간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는 연인산에 과거 이루지 못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길수라는 청년이 연인산에 들어와 나무를 제거하고 불을 지른 자리에 농경지를 조성하는 화전을 일구면서 살았고, 겨울에는 산의 나무로 숯을 구워 아래 마을에 팔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길수라는 청년이 어디서 온 사람인지 또는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산속에서 생활하던 길수에게는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다. 그 처녀는 김참판 댁에서 종으로 일하던 소정이었다. 소정은 본래부터 김참판 댁의 종이 아니었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흉년을 넘기기 위해 김참판에게 쌀을 꾸어다 먹은 게 화근이 되어 종처럼 일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길수는 한 해에 서너 번 씩 김참판 댁으로 숯을 팔러 오다가 그의 집에서 일하는 소정을 만나게 되었고, 둘은 서로 외로운 처지임을 알게 되면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수가 숯을 구워서 마을로 가지고 내려오다가 눈길에 넘어지게 되었고 김참판 댁에서 병을 치료하게 되었다. 길수는 열흘 동안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소정과 결혼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김참판에게 소정과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김참판은 길수에게 조 백 가마를 내놓던가 아니면 산에 있는 숯 가마터를 내놓고 이곳을 떠나 살면 둘의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길수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숯가마를 내줄 수 없었기에 조 백 가마를 가져오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조 백 가마를 마련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 백 가마를 마련할 방법을 고민하던 길수는 연인산 정상 바로 아랫부분에 조를 심을 수 있는 커다란 땅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밤낮으로 밭을 일궈 조를 심을 수 있는 땅 아홉 마지기를 만들었다.

지금도 연인산 정상 부근에 넓은 평지가 있어 주변의 주민들이 이 일대를 ‘아홉 마지기’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홉 마지기의 땅은 조를 심으면 백 가마 이상을 얻고도 남을만한 넓은 땅이다.

길수가 심은 조는 큰 탈 없이 잘 자라 이삭이 여물어 가기 시작했고 길수와 소정은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소정을 길수와 결혼시킬 마음이 없던 김참판은 길수를 역적의 자식이라고 모함을 했다.

길수는 포졸들이 그를 잡기 위해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치자 그들을 피해 도망을 쳤고, 더 이상 이곳에 살기 어렵다는 생각에 소정과 함께 도망가고자 소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소정은 길수가 역적으로 잡혀갔다는 소문을 듣고 이미 자신의 남은 생을 포기해 버린 상태였다.

길수는 굳어버린 소정의 시신을 안고 아홉 마지기 땅으로 돌아와 자신의 희망이었던 조를 불태우며 그 불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때 죽은 줄로 알았던 소정이 홀연히 아홉 마지기 땅을 찾아갔다.

다음날 아침 마을 사람들이 아홉 마지기 땅으로 올라가 보니 길수와 소정은 보이지 않고 그들이 신었던 신발 두 켤레만 놓여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발이 놓여 있던 자리 주변에는 철쭉나무와 얼레지가 불에 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고 한다.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연인산]

지금도 봄이 되면 연인산 정상에는 얼레지꽃과 철쭉꽃이 아주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피어오른다. 연인산에서 사랑을 기원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는 길수와 소정의 영혼이 아홉 마지기 땅에 영원히 남아 이곳을 찾는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연인산은 옛날 길수와 소정이의 애틋한 사랑이 얽혀 있고, 근래에는 화전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이름 없는 산이었다. ‘연인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옛날 이곳에서 사랑을 싹 틔웠던 길수와 소정이처럼 영원히 사랑과 우정을 나누기를 소망한다는 점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연인산 정상에는 ‘연인산’ 표지석과 함께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문구가 돌에 새겨져 있다. 연인들이 이산에 와서 사랑과 소원을 빌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진다. 남녀가 우정으로 올랐다가 돌아갈 때에는 연인이 되어 내려오는 산이 가평군에 있는 연인산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