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462
한자 火田民
영어공식명칭 Slash-and-Burn Farmers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덕묵

[정의]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화전을 하여 농사를 짓는 사람

[개설]

화전민들은 돗치장집에 거주하며 산에 불을 지른 후에 밭을 일구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가평의 토박이 주민들 중 70세 이상 된 분들은 화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잣나무나 낙엽송으로 덮여 있는 산자락이 1960년대만 하더라도 화전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가평에서 화전민은 순화전민과 겸화전민으로 구분된다. 순화전민은 화전만 하는 사람이고 겸화전민은 화전 외에도 토지가 있어 화전을 겸하는 사람이다. 적목리 조무락골은 순화전만 하던 곳이고 제령리 상촌과 같은 곳은 겸화전이 성행했던 곳이다. 가평에서 화전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되고 얼마 후 분단이 되면서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화전을 하면서부터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나무 하나만 베어도 순사들에게 끌려가야 했기 때문에 화전을 할 수 없었다.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산판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적목리에 가면 화전을 하기 쉽다고 소문을 내서 당시 농사지을 땅이 없던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이나 남한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적목리로 몰려들었다. 화전은 개인 산에서는 할 수 없어 도유림이나 국유림에서 했다. 적목리에서 행해진 순화전은 가족끼리 하고 수확기에 곡식을 지고 내려 올 때만 울력에 의지했다. 제령리에서 1960년대까지 행해지던 겸화전의 경우 혼자서는 못하여 여러 집이 공동으로 했다. 크면 열집, 작게는 두서너 집이 같이 했다. 공동으로 밭을 조성한 후 각자 몫을 나누어 경작했다. 이렇게 단체를 결성하면 처음 산에 가서 시작할 때 고사를 지냈다. 즉, 북어, 술, 창호지를 가지고 가서 절을 한 후 북어는 창호지에 싸서 나무에 걸어놓았다. 1972년 정부에서는 화전민들에게 가구당 35만원을 주고 집을 철거하고 이주하기를 권했다. 이것이 1차 화전 정리 사업인데 이 때 적목리에서 주민 등록이 되어 있는 가구 40호와 무허가로 산에서 사는 가구 20호가 있었는데 무허가로 살던 사람들은 당시 그냥 빈손으로 나갔다. 이때 대여섯 집만 남고 다 나갔다. 이어서 도유림 식목사업이 개시되어 화전을 하던 땅에 먼저 낙엽송을 심고 이어 잣나무를 심었다. 1973년 2차 화전정리사업이 있어 적목리에 남아 있던 집들도 대부분 나갔다. 적목리 조무락골에 있던 사람들은 인천으로 열 집이 넘게 갔는데 당시 받은 돈으로 땅을 살 수 없었으나 인천에서 집을 구입할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화전을 일구는 방법]

화전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적합한 땅을 선택해야 한다. 땅은 조금 우묵해서 바람의 영향을 덜 받거나 평평하여 농작물을 심는 것이 용이해야 좋다. 흙을 밟아서 물렁한 곳을 선택하고 흙색이 거무스름한 빛을 띠어야 좋다. 땅이 딱딱하고 붉은 빛을 띠는 곳은 농사가 잘 안 된다. 화전할 자리는 먼저 나무를 베어 놓은 사람이 임자이기 때문에 자리를 가지고 다투는 일은 없다. 남의 자리에서 화전을 하고 싶으면 주인에게 허가를 구해야 하는데 주위가 전부 산이라 화전할 자리는 많았다. 화전할 땅을 고르고 나면 나무를 베어 내고 불을 지른다. 적목리의 순화전의 경우에는 음력 7월이 지나 가랑잎이 많을 때나 가을에 미리 나무를 베었다가 이듬해 음력 2월 경에 불을 지르는데 제령리 겸화전의 경우 가을철은 벼농사로 바쁘기 때문에 봄에 눈이 녹으면 나무를 벤 후 바로 불을 질렀다. 나무를 벨 때는 낫으로 작은 가지를 치고 나서 톱으로 큰 둥치를 자른다. 쓰러뜨린 나무는 그대로 두었다가 나무가 어느 정도 마르면 불을 질렀다. 불을 태우는 날은 달을 보고 잡는다. 달무리가 거리가 멀면 사 나흘 있으면 비가 왔고 가까우면 다음날 비가 오기 때문에 달무리가 좀 떨어져 있는 날 불을 태웠다. 바람이 없는 날 아침 11시 이전에 불을 놓았다. 11시 이후에는 바람이 많아져 큰 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을 놓을 때는 방향도 중요한데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태워야 불이 커지지 않으며 아래에서 불을 놓으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화전에서 경작]

화전을 일구는 일을 할 때는 밥을 싸가지고 산에서 먹었다. 점심으로는 나무로 판 남박[나무함지]이나 쪽바가지에 밥이나 죽을 담아서 베보자기에 싸서 다녔고 술도 가지고 다녔다. 불 놓는 날만은 술을 절대로 가지고 가지 않는다는 금기가 있다. 이 때 술을 먹으면 불이 따라와 뒷불이 난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조심해도 해마다 화전으로 인해 크고 작은 산불이 끊이지 않았다. 화전을 하는 처음 두 해는 무엇을 심어도 평지의 밭보다 나았다. 열매도 잘 여물고 벌레도 잘 먹지 않았다. 대개 첫해는 조, 콩, 팥, 옥수수 등을 심고 돌이 많은 각담밭에는 조나 팥을 심었다. 흙을 파기 좋은 곳에는 감자를 심었다. 두 번째 해에는 콩과 옥수수, 세 번째 해에는 중복 때 메밀을 심었다. 이렇게 삼사 년 하고 나면 밭을 묵혔으나 집에서 가까운 밭은 계속 농사를 짓기도 했다. 화전은 10리나 떨어져 있었는데 집에서 먹는 것은 주로 가까운 곳에 심었다. 땅의 경사가 30도 이하는 소로 갈았다. 쌍겨리로 사람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잡아주면서 아래에서 위로 치갈았다. 치갈아야 소가 미끄러지지 않고 힘을 받을 수 있다. 30도가 넘는 곳은 사람이 괭이로 파야 했다. 화전은 김매기를 두 번만 하면 끝났다. 수확은 메밀을 제일 먼저 했는데 늦으면 다람쥐가 먹는다. 그 다음으로는 콩, 팥, 조 순서로 추수를 한다. 곡식은 지게에 지고 단을 묶어서 지고 내려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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