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786
한자 權昌銖
영어공식명칭 Gwon Chang-s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연표보기 - 권창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권창수 은산장터 만세시위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권창수 징역 8월형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권창수 공소 기각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70년연표보기 - 권창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권창수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권창수 출생지 -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
거주|이주지 권창수 거주지 -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
활동지 권창수 활동지 -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 은산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권창수(權昌銖)[1892~1970]는 1919년 4월 4일 은산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가계]

권창수는 경상도 풍기군 하리면 금곡동[지금의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권창수는 평소 농사를 지으면서도 인근 시장에서 어물장사를 하였기에 세상 물정에 밝았다고 한다. 권창수는 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를 전하였다. 그런 가운데 바로 이웃한 예천군 용문면의 만세시위운동을 듣고 크게 자극을 받아, 같은 마을의 이용헌(李容憲)[1880~1934]·이재덕(李宰德)[1866~?]·이헌호(李軒頀)[1874~1938]·채동진(蔡東鎭)[1878~1967] 등과 함께 하리면에서도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약속하였다.

권창수는 1919년 4월 4일 이들과 함께 영주군 하리면 은산장날 장터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황병석(黃炳奭)의 집에 모였다. 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나서 음식점 안에서 몇 차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밖으로 달려나갔다. 권창수는 이들과 함께 거리의 군중을 유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이 모여들자 “일본군 헌병주재소와 면사무소로 가서 이를 파괴하자”라고 외치며 군중을 이끌었다.

은산장터에서 일어나는 만세 소리를 듣고 일본군 수비대와 헌병들이 황급히 출동하였다. 권창수 등은 일본군에 의해 체포된 뒤, 1919년 4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권창수는 이에 불복하고 공소하였으나 1919년 5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형 확정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권창수는 2000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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