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773
한자 李宰德
영어공식명칭 Lee Jae-de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6년연표보기 - 이재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이재덕 은산장터 만세시위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이재덕 징역 8월형 선고
추모 시기/일시 2007년연표보기 - 이재덕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이재덕 출생지 -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
거주|이주지 이재덕 거주지 -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
활동지 이재덕 활동지 - 경상북도 예천군 은풍면 은산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재덕(李宰德)[1866~?]은 은산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가계]

이재덕은 경상도 풍기군 하리면 금곡동[지금의 예천군 은풍면 금곡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이재덕은 평소 농사를 지으며 한학을 공부하였다. 일제의 식민통치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중에 고종황제의 서거 소식과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소식을 듣고, 자신도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재덕은 같은 마을의 이헌호(李軒頀)·채동진(蔡東鎭)[1878~1967]·이용헌(李容憲)[1880~1934]·권창수(權昌銖)[1892~1970] 등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킬 것에 대해 의논하였고, 모두가 찬동하였다.

이재덕은 이들과 함께 1919년 4월 4일 영주군 하리면 은산동[지금의 예천군 은풍면 은산리] 장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황병석(黃炳奭)의 집에 모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실내에서 먼저 몇 차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재덕은 이들과 함께 시장을 돌며 군중을 향하여 대한독립만세를 계속 크게 외쳤다. 이재덕은 호응하는 군중이 늘어나자 “일본군 헌병주재소와 면사무소로 가서 이를 파괴하자”라고 주장하며 군중을 선도하였다.

이재덕은 이헌호·채동진·이용헌·권창수 등과 함께 군중이 외치는 만세 소리를 듣고 황급히 출동한 일본군 수비대와 헌병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재덕은 1919년 4월 12일 「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1919년 5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심 취소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이재덕은 2007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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