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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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永九 |
영어공식명칭 | Yun Yeong-g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윤영구 이강년 의진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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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윤영구 김상태 의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09년 - 윤영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1년 - 윤영구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윤영구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
거주|이주지 | 윤영구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
활동지 | 윤영구 활동지 - 충청북도 제천시|충청북도 단양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개설]
윤영구(尹永九)[?~1909]는 1907년 정미의병기에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 및 김상태 의진(金尙台義陣)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순국하였다.
[가계]
윤영구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윤영구는 1907년 이후 이강년(李康秊)[1858~1908] 의진에 참여하여 충청북도 제천·영춘·단양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08년 13도창의대진소의 서울 진공 작전 실패 이후 이강년 부대는 강원도를 거쳐 경북 북부 지역으로 남하하여, 경북 북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여러 의병부대와 연합하였다. 1908년 6월 4일 이강년이 체포되어 순국한 후에는 중군장 김상태(金尙台)[1864~1912]가 의병을 규합하여, 태백산과 소백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윤영구도 이강년 순국 후 김상태 의진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의병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던 1909년 11월 17일 제천경찰서와 영천수비대의 공동 수색대에 의해, 김상태 의병장 휘하의 윤영석(尹永錫)[?~1909]·윤우석(尹遇錫)[?~1909]·김두갑(金斗甲)[?~1909]·김수갑(金守甲)[?~1909]·김봉정(金鳳政)[?~1909]·김치순(金致順)[?~1909]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윤영구 등은 압송 도중 재기를 위해 탈출을 시도하다가 피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윤영구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