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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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永錫 |
영어공식명칭 | Yun Yeong-se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윤영석 이강년 의진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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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윤영석 김상태 의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09년 - 윤영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1년 - 윤영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윤영석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
거주|이주지 | 윤영석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
활동지 | 윤영석 활동지 - 충청북도 제천시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개설]
윤영석(尹永錫)[?~1909]은 정미의병기 이강년 의진(李康秊義陣) 및 김상태 의진(金尙台義陣)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피살당하였다.
[가계]
윤영석의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윤영석은 1907년 고종 황제가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으로 군대마저 해산되자, 충청북도 제천에서 창의한 이강년 의진에 참여하였다. 윤영석은 이강년 의진에서 충청북도 제천·영춘·단양, 경상북도 순흥·봉화 등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다 1908년 이강년이 청풍 작성전투(鵲城戰鬪)에서 체포되자, 중군장 김상태가 이강년 휘하의 의병을 이끌었다. 윤영석도 김상태 의진에 합류하여, 영춘·단양·풍기·순흥·봉화 등 소백산 일대에서 유격전으로 일제에 대항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강화된 의병 토벌작전을 이겨내지 못하고 1909년 11월 17일 제천경찰서와 영주수비대의 공동수색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에 윤영석은 재기를 도모하고자 함께 체포된 윤영구(尹永九)·윤우석(尹遇錫)[?~1909]·김두갑(金斗甲)[?~1909]·김수갑(金守甲)[?~1909]·김봉정(金鳳政)[?~1909]·김치순(金致順)[?~1909] 등과 탈출을 시도하다 피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윤영석은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