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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473
한자 英聯邦參戰紀念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365-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주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 - 6·25전쟁 발발
건립 시기/일시 1967년 9월 30일연표보기 - 영연방 참전기념비 건립
현 소재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365-1 지도보기
원소재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365-1
성격 현충시설물
재질 대리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부지 면적 2783㎡|기단 높이 1m|총 높이 12m
관리자 가평군

[정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연방 4개국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

[건립 경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북한군은 6월 27일 서울을 점령하였으며 빠른 속도로 남진하였다. 국군은 낙동강까지 후퇴하였다. 1950년 9월 15일 시작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이후 유엔군은 9월 26일에 서울에 진입하여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였다. 국군과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은 10월 19일에 평양을 탈환하였고 10월 말에는 압록강 유역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6·25전쟁은 장기화 되었다. 1951년 1·4후퇴로 서울은 재함락 되었으나, 3월에 다시 국군과 UN군은 서울을 재수복하였다.

서울이 다시 재수복된 이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4일간 가평군 북면 일대에서 중국군의 춘계 대공세가 시작되면서 영연방[영국연방] 전투가 시작되었다. 유엔군으로 참전하였던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은 중국군의 대공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하였고,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영연방 전투의 승리는 서울~춘천 사이의 도로를 향해 진격하던 중국군을 막아낸 것이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인하여 한국군과 UN군의 퇴로가 확보되었고, 막대한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 영연방 참전기념비6·25전쟁 당시 중국군에 맞서 싸워 국군과 UN군의 퇴로를 확보하는 등 큰 공을 세운 영연방 4개국의 전공(戰功)을 기리기 위하여 유엔한국참전군협회와 가평군이 1967년 9월 30일에 건립하였다.

[형태]

영연방 참전기념비는 대리석을 4각으로 쌓아 올린 형태로 비의 중앙에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국기가 새겨져 있다. 4개국의 국기 아래에는 6·25전쟁 참전으로 희생된 영연방의 희생자 수와 참전비문이 기록되어 있다.

[금석문]

참전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계 평화와 자유 수호를 위해 한국전쟁 중 이 땅에서 공헌한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의 영웅적인 용사들에게 바친다.

1967년 9월 30일

건립 : 유엔군 한국 참전국 협회 및 가평군민 일동

[현황]

매년 4월 말에 영연방 6·25전쟁 참전 기념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영연방 6·25전쟁 참전 기념행사에는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4개국의 참전용사와 가족, 그리고 각국의 대사관 직원 등 약 200여명이 참가한다.

[참고문헌]
  • 『가평군지』(가평군사편찬위원회, 2006)
  • 『가평문화 30년사』(가평 문화원, 2017)
  • 가평문화원(http://www.gpc.or.kr/)
  • 가평군 문화관광(https://www.gptour.go.kr/)
  • 국가보훈처(https://www.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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