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474
한자 龍門山戰鬪加平地區戰蹟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천안리 9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주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 - 6·25전쟁 발발
건립 시기/일시 1997년 6월 23일연표보기 - 용문산전투 가평지구전적비 건립
현 소재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천안리 98 지도보기
원소재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천안리 98
성격 현충시설물
재질 가평석|오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높이 19.51m
관리자 가평군

[정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있는 6·25전쟁 때 벌어진 용문산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비.

[건립 경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장기화 되었다. 1951년 3월 서울이 재수복 된 이후 4월부터 유엔군은 서울 북상에 김포반도-행주-구파발-창동-용문산-홍천-한계령-설악산-속초를 무명선(無名線, noname line)으로 칭하고 절대적 방어선으로 설정하였다. 4월 중국군의 공세 이후 중국군은 약화되어 있었다. 반면에 유엔군의 화력과 보급체계가 잘 확충되어 있었다.

중국군은 서남쪽부터 동북쪽으로 뻗어 있는 사선 형태의 전선에서 동부 전선을 돌파하고자 하였다. 당시 유엔군은 서울의 북부를 미군이 방어하도록 하였고 한국군을 동부 전선[홍천~동해안]에 배치하였다. 이러한 전선 상황에서 중국군은 한국군을 궤멸시키고 서부 전선의 미군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동부 전선을 공격하려 하였다. 중국군의 전략적 판단은 1951년 5월 16일 오후 4시에 실행되었다. 5월 18일 중국군의 대공세가 시작고 동부의 국군 제3군단은 궤멸당하였으며, 미군 9군단의 전선은 홍천강 선까지 밀리게 되었다.

대공세가 개시된 당시 용문산에는 국군 6사단이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6사단의 2연대 1·2·3대대가 방어진을 구축하였고 1·3대대가 중국군을 막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후퇴하였다. 그리고 전초 부대를 담당하고 있었던 2대대와 합류하게 되었다. 2연대는 중국군에 후퇴하지 않고 항전하였다. 2연대를 주력군으로 착각한 중국군 제63군은 187·188 2개의 사단과 189사단을 투입하여 2연대를 총공격하였다. 2연대와 중국군 3개 사단이 전투 중일 때 국군 6사단의 7·19연대는 후방을 기습하여 중국군을 포위하였고, 유엔군과 국군 포병들은 집중포화를 시작하였다. 크게 패한 중국군은 5월 21일에 포위섬멸을 피하기 위하여 퇴각하였다. 퇴각하는 중국군을 6사단의 2·7·19연대가 추격하였고 가평과 춘천을 넘어 화천발전소까지 진격하여 중국군을 격퇴하였다. 화천호에 이른 중국군은 퇴로가 막히게 되었고 국군 6사단은 중국군의 뒤를 공격하였다. 그 결과 중국군은 국군 6사단에 의하여 대부분이 화천호에 수장 혹은 격멸당하였다. 용문산전투는 소수의 병력인 국군 6사단의 2대대가 다수의 병력이었던 중국군을 필사적으로 막아낸 전투이다.

용문산전투 가평지구전적비는 방어 전투의 모범 사례로 알려진 용문산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 육군 제6사단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하여 1997년 6월 23일에 건립되었다. 용문산전투 가평지구전적비는 경기도와 가평군의 지원금, 6사단 장병들의 성금, 예비역 장교, 가평군민의 성금으로 세워졌다.

[위치]

용문산전투 가평지구전적비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천안리 98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용문산전투 가평지구전적비는 863평의 부지에 높이 19.51m 규모의 비이다. 용문산전투 가평지구전적비의 높이 19.51m는 용문산전투가 일어난 1951년도를 의미한다. 용문산전투 가평지구전적비 중앙에는 청성군인 4명이 진격하는 모습을 의미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금석문]

용문산전투 가평지구전적비 앞면에는 ‘용문산전투가평지구전적비(龍門山戰鬪加平地區戰績碑)’ 글자와 용문산전투의 약사가 적혀있다. 왼쪽 면에는 「가평하늘 푸른 별이여」라는 박경식의 헌사가 기록되어져 있으며, 오른쪽 면에는 전적비의 건립 개요와 취지가 쓰여있다.

[현황]

매년 5월 넷째 주 금요일에는 용문산전투를 기억하기 위한 추모제가 진행되고 있다. 용문산전투 가평지구전적비가 세워져 있는 곳에는 ‘파로호(破虜湖)’라는 이승만 전대통령의 글씨 탁본을 새긴 비석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