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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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飛鳳山 |
영어공식명칭 | Bibongsan(Folktal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미숙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비봉산」 『영주시사』2에 「비봉산」으로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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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비봉산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
성격 | 설화|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이여송 |
모티프 유형 | 비봉산과 산의 혈을 끊은 이여송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비봉산과 관련된 이야기.
[개설]
「비봉산」은 옛날 봉황 세 마리가 살고 있어서, 산 이름을 ‘비봉산(飛鳳山)’이라고 한 유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동네에서는 큰 인물이 많이 났는데, 이여송(李如松)이 산에 말뚝을 박아 혈을 끊어 더는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비봉산」은 2010년 영주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주시사』2에 수록되어 있으며, 제보자는 구난옥[여, 88세]과 황순남[여, 76세]이다.
[내용]
옛날 천지가 개벽이 되었을 때, 온 세상이 물에 잠겨 있었다. 물이 서서히 마르자 이곳에 산이 나타났는데, 그때 봉황 세 마리가 날아와서 이 산 위에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산을 ‘비봉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 동네에는 비봉산의 정기를 받고 큰 사람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부자 동네로 유명해졌다.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출병했던 명나라 장군 이여송은 조선에 좋은 혈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국을 다니면서 온 산에 말뚝을 박아 좋은 혈을 끊어놓았다. 조선이 중국보다 잘 되는 것을 시기해서인데, 이때 비봉산에도 말뚝을 박아 놓았었다. 그 뒤로부터는 이 동네에 큰 사람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비봉산」의 기본 모티프는 봉황이 살아서 ‘비봉산’이 되었다는 것과 이여송이 비봉산에 말뚝을 박아서 산의 혈을 끊어서 더는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영덕군 영덕읍에서 전하는 「들온산, 이여송이 혈을 지른 곳」에 관한 이야기도 이와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