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789 |
---|---|
한자 | 金勝基 |
영어공식명칭 | Kim Seung-g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924년 10월 20일 - 김승기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 김승기 징병 거부 |
추모 시기/일시 | 1986년 - 김승기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승기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몰년 시기/일시 | 2017년 10월 13일 - 김승기 사망 |
출생지 | 김승기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
거주|이주지 | 김승기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
학교|수학지 | 대륜중학교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김승기 활동지 - 경상북도 영주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야학운동 |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승기(金勝基)[1924~2017]는 1944년 10월 영주 지역에서 야학운동을 전개하고, 일제의 징병 영장 발부를 거부한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김승기는 1924년 10월 20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김승기는 대구 대륜중학교 재학 중 교사 이규동(李揆東)과 선배들의 영향으로 항일민족의식을 키웠다. 이에 대륜중학교 4학년 때부터 고향인 영주에서 야학운동을 전개하였다. 졸업 후인 1944년 10월에는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을 구실로 한국의 인적·물적 자원을 강제 동원하고, 또 젊을 청년들을 징병하자, 이를 거부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승기는 고향 친구 김동태(金東泰)와 함께 징병에 응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한학자 권상일(權相日)을 비롯한 권춘섭(權春燮)·김혁기(金赫基) 등의 도움을 받아 봉화군 태백산 기슭에 은신처 겸 투쟁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그런 가운데 1944년 10월 20일 자로 일제의 전쟁동원정책에 따라 징병 영장이 발급되자, 동시에 징병 영장을 받은 김두진(金斗鎭)·최갑룡(崔甲龍)·김복경(金福慶)·김혁기 등 청년들과 함께 태백산 거점으로 향했다. 태백산 거점에서 피신해있으면서 동지를 규합하고 자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던 중 1945년 7월 8일 고향으로 잠입했다가 일제 관헌에 의해 검거되었다. 이 사건은 일명 ‘태백산 거점 5인조 사건’이라고도 불렸다. 김승기는 1945년 8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일제 사법 당국에 의해 징역 1년 6개월을 언도받고, 안동형무소와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45년 8.15 해방과 함께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승기는 1986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