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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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在夏 |
영어공식명칭 | Jo Jae-ha |
이칭/별칭 | 조용구(趙龍九)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72년 - 조재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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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5년 - 조재하 영주 대동상점 설립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8년 - 조재하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조재하 징역 6월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37년 - 조재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0년 - 조재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조재하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 |
거주|이주지 | 조재하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 |
활동지 | 조재하 활동지 - 경상북도 영주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조재하(趙在夏)[1872~1937]는 대한광복회가 군자금 모집을 위해 1915년 설립한 영주 대동상점 운영에 참여하였으며, 1918년 대동상점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가계]
조재하는 1872년 1월 16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조용구(趙龍九)이다.
[활동 사항]
1913년 풍기에서 조직된 광복단과 1915년 1월 대구에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이 통합되어, 1915년 7월 15일 대한광복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대한광복회는 만주지방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필요한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1915년 9월 11일 박제선(朴齊璿)[1878~1938]·권영목(權寧睦)[1884~1935]·정응봉(鄭應鳳)[1895~1947]·류명수(柳明秀)[1893~1926] 등 교원 및 부호들과 함께 영주의 영주시장에 잡화상 대동상점을 설립하였다. 이때 조재하도 대동상점의 군자금 모집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7년에 대동상점 운영을 주도했던 박제선 등은 만주 이주를 준비하게 된다. 먼저 박제선이 이주지 선정을 위해 만주지방을 시찰한 뒤, 1918년 3월경부터 만주 봉천(奉天)으로 이거할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와 관련해 조재하는 1917년 12월 26일 서울 남문여관에서 대한광복회의 총사령 박상진(朴尙鎭)[1884~1921]을 비롯하여 박제선·권영목·김노경·류명수 등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조재하 등은 권영목을 먼저 만주로 보내 장래 있을 이주를 준비시키고, 길림독군(吉林督軍) 맹사원(孟思遠)의 허락을 얻어 군사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이교덕·권영목·류명수 등이 대동상점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현금 700원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1918년 3월 권영목 등이 체포되면서, 조재하도 함께 체포되었다. 조재하는 1919년 대전지검 공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강도 살인 공갈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조재하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