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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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永河 |
영어공식명칭 | Kim Yeong-ha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명근 |
출생 시기/일시 | 1919년 - 김영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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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9년 - 김영하 조선학생동지회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 김영하 피체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 김영하 징역 1년 6월형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김영하 대통령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영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몰년 시기/일시 | 2015년 - 김영하 사망 |
출생지 | 김영하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 |
학교|수학지 | 연희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김영하 활동지 - 서울특별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조선학생동지회 경상도 책임자 |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영하(金永河)[1919~2015]는 1939년 경성(京城)에서 학생대표 12명을 규합하여, 조선학생동지회(朝鮮學生同志會)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준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가계]
김영하는 1919년 3월 3일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김영하는 1939년 12월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민족 독립에 뜻을 품고 동교생 김상흠(金相欽)·서영원(徐泳源)[1920~?]·김재황(金在璜)[1917~?]·이동원(李東元)[1926~2006]·민영로(閔泳魯)[1919~?] 등과 함께 경성부 사직동 소재 윤주연(尹柱淵)[1916~2010]의 집에 모여 항일결사를 위한 조선학생동지회를 조직하였다. 조선학생동지회는 3.1운동과 같은 방식의 운동을 거행하기로 하고, 1942년 3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또한, 조직의 전국적 확대를 도모하고 동경 유학생 등 해외 유학생과도 연락을 맺어 거국적인 거사를 계획하였다. 이때 김영하는 조선학생동지회의 경상도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김영하는 1940년 2월부터 1941년 7월까지 각지에서 회합하고 독립의식을 길렀으며, 동지 규합 및 조직 확대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1941년 7월에 동회의 하부조직인 원산상업학교의 조직이 일제 경찰에 발각됨으로써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써 김영하는 1941년 9월에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연희전문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피체 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3년 3월에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김영하는 해방 후 공로를 인정받아 추가 졸업장을 받았으며,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