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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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卞聖出 |
영어공식명칭 | Byeon Seong-chu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변성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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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0년 - 변성출 의병 군자금 모집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 변성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활동 |
추모 시기/일시 | 2010년 - 변성출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변성출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 |
거주|이주지 | 변성출 이주지 -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
활동지 | 변성출 활동지 - 경상북도 영주시|경상북도 안동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변성출(卞聖出)[1881~?]은 1910년 안동 지역에서 의병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22~1923년에는 영주 지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가계]
변성출은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에서 출생하였다. 이후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에 이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 사항]
변성출은 1910년 1월 안동군 북후면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 경상북도 영주·안동·봉화·예천 등지의 산간 지역에서는 김상태(金尙台)[1864~1912]·최성천(崔聖天)[?~1910]·윤국범(尹國範)[1882~1911]·정경태(鄭敬泰) 등의 의병부대들이 일본군 토벌대와 유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변성출도 이들 의병부대와 연결되어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변성출은 1910년 1월 곤봉을 휴대하고 안동군 북후면 도계동에 있는 권상황(權相璜)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징발명령서를 보이며 두 차례에 걸쳐 돈 50냥과 6냥을 징수하였다. 1910년 1월 북후면 두산동 동장 강성수(姜性秀)를 찾아가 돈 38냥과 목면을 징수하였다. 변성출은 이 일로 체포되어 1910년 2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강도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3년을 복역한 뒤 감형되어 출감하였다.
1919년 3.1운동 결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하여 베이징과 만주 등지에서는 무장투쟁 독립운동 단체들이 결성되어 독립전쟁을 표방하고 나섰다. 당시 영주 지역에서도 신태식(申泰植)[1864~1932]·김찬규(金燦奎)[1866~1929] 등이 조직한 조선독립후원의용단의 활동, 박제선(朴齊璿)[1878~1938]·권영목(權寧睦)[1884~1935] 등이 경영하는 대동상점의 활동, 김찬규 등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자금 모집 활동 등이 전개되고 있었다. 변성출도 이들 단체와 연계하여 1922년 1월부터 1923년 1월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3년 8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주거침입·강도·상해 등의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변성출은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