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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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錫五 |
영어공식명칭 | Yun Seok-o |
이칭/별칭 | 윤석오(尹石五)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70년 - 윤석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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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윤석오 이용구 의진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윤석오 김상태 의진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 윤석오 징역 7년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 윤석오 항소 기각 |
추모 시기/일시 | 2013년 - 윤석오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윤석오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미곡리 |
거주|이주지 | 윤석오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미곡리 |
활동지 | 윤성오 활동지 - 경상북도|충청북도|강원도 일원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영주 출신의 의병.
[개설]
윤석오(尹錫五)[1870~?]는 1908년 2월부터 김상태(金尙台)[1864~1912] 의진 소속의 이용구(李容九)[1868~1912] 부대에 투신하여 경북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을 하였다. 1909년에는 충청북도 제천에서 김상태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가계]
윤석오는 다른 이름으로 ‘윤석오(尹石五)’를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미곡리에 거주하였다.
[활동 사항]
윤석오는 1907년 고종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항쟁이 전개되자 1908년 이용구 의진에 투신하였다. 1908년 2월 윤석오는 이용구 등과 함께 순흥군 대평면 묵동(墨洞)의 남윤오(南允五)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요구하였으나, 가진 돈이 없어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1908년 3월 이용구가 지휘하는 의병 20여 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강원도 영월군 칠령(七嶺) 방면에서 군수품과 군자금 마련 활동을 하였다.
이용구 의진은 1908년 경북 북부 지역 풍기·순흥·영천·봉화 일대에서 활동했던 김상태 의진에 속한 소규모의 의병부대로 추정되며, 당시 김상태 의진은 이강년 의진에 속하여 본진과 연합 또는 분리하면서 충청도·경상도·강원도를 잇는 태백산과 소백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의병부대였다. 그러나 1908년 7월 2일 이강년이 체포된 뒤에는 이강년의 군사지휘권을 인계받아 독자적으로 부대를 편성하여 충청북도와 경북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윤석오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