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715
한자 李惟馨
영어공식명칭 Lee Yu-hyeong
이칭/별칭 덕명(德明),초당(草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17년연표보기 - 이유형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92년연표보기 - 이유형 사망
거주|이주지 이유형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성격 효자
성별
본관 공주(公州)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효자.

[개설]

이유형(李惟馨)[1617~1692]은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으며, 현종의 명으로 복호(復戶)를 받았다.

[가계]

이유형의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덕명(德明), 호는 초당(草堂)이다. 아버지는 선교랑 이여(李璵), 어머니는 호군을 지낸 구사현(具思賢)의 딸 능성구씨(綾城具氏), 할아버지는 군자감정을 지낸 이정견(李庭堅)[1557~1610], 증조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이석간(李碩幹)[1509~1574]이다. 부인은 권검(權檢)의 딸 예천권씨(醴泉權氏)이다. 이유형는 영주 지역의 입향조 이진(李畛)[1420~1484]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 이석간이진의 증손자이다.

[활동 사항]

이유형은 11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법에 따라 상례를 치러 이웃들이 칭송하였다. 아버지 이여가 일찍이 알 수 없는 병으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거동도 불편하였는데, 이유형은 항상 곁에 있으면서 옷과 음식을 공양하였다. 1643년(인조 21) 아버지가 역병에 걸렸을 때는 직접 변을 맛보고 건강을 살폈고, 기절했을 때에는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입으로 흘려보내 살아나게 했다. 1661년(현종 2)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문밖에 여막을 짓고 삼년상을 치렀다. 상을 치르는 동안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슬픔에 피눈물을 흘렸다. 고을 사람들이 이 일을 조정에 알리자, 현종은 복호의 명을 내렸다.

이유형은 옛 충신과 효자의 사적을 탐독하였고, 항상 『소학(小學)』을 보며 그 내용을 실천하였다. 평소 집 동쪽에 부모를 봉양하는 처소로 삼기 위하여 작은 정자를 세워 초가지붕을 둘렀는데, 스스로 호를 ‘초당(草堂)’이라 하였다. 다른 사람의 부모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친소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약을 지어 보내주었다. 또 매부가 일찍 죽자 어린 조카들을 거두어 잘 양육하였으며, 때를 놓치지 않고 모두 혼인시켜 주었다. 고모부 나이준(羅以俊)[1602~1676]의 집이 가난하여 이유형에 의탁하였는데, 숙부와 같이 섬기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보고 행하였다. 품계는 통덕랑에 올랐다.

[상훈과 추모]

류이좌(柳台佐)[1763~1837]와 나학천(羅學川)[1658~1731]이 이유형의 효행을 조정에 알리기 위해 정문(呈文)을 지어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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