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4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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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飛鳳山城 |
영어공식명칭 | Bibongsan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산29-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태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5년 - 비봉산성 1차 발굴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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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6년 - 비봉산성 2차 발굴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7년 - 비봉산성 3차 발굴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1년 - 비봉산성 4차 발굴조사 |
현 소재지 | 비봉산성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산29-1 |
원소재지 | 비봉산성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산29-1 |
성격 | 산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남북 약 335m|동서 약 460m|전체 길이 약 1,350m |
면적 | 약 85,950m² |
관리자 | 영주시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비봉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개설]
비봉산성(飛鳳山城)은 삼국시대 축조된 석축산성으로 규모는 남북 약 335m, 동서 약 460m로 전체 길이는 약 1,350m이며, 성내 면적은 약 85,950m²이다.
[건립 경위]
1986~1991년 4차에 걸쳐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한 비봉산성 발굴조사에서 5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굽다리접시류 다수가 수습되었다. 또 6~7세기에 걸쳐 유행한 짧은굽다리접시[短脚高杯], 인문토기(印文土器)도 함께 출토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주름무늬병·덧띠무늬병과 고려시대의 도기 및 자기류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비봉산성 주변에서 발굴조사된 벽화고분의 편년은 대략 6~7세기로 확인되므로, 비봉산성 축조 연대의 상한은 5세기 후반으로 추정해 볼 수 있으며, 하한은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비봉산성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오랫동안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비봉산성은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산29번지 일대의 비봉산 남서쪽 산록[해발고도 360m]에 자리 잡고 있다.
[형태]
비봉산성 성곽의 규모는 높이 약 2m, 너비 1~1.2m, 길이 약 1,350m이다. 비봉산성은 해발 370~420m에서 가파른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토석혼축으로 쌓여 있다. 동북에서 서남으로 약간 경사진 800m 평탄지에 건물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다수 출토되었다. 또 건물의 적심석으로 보이는 가로 400㎝, 세로 60㎝ 규모의 석군이 지표하 65㎝에서 정남북 방향으로 3개소가 확인되었다. 길이 40~50㎝, 너비 15~20㎝의 성석을 사용하여 바른층쌓기로 내외협축(內外夾築)하였는데, 성벽 기저부 폭은 4.8~5.8m, 높이는 3.5~4.0m로 계측된다. 또한, 성체 외벽에는 60㎝ 높이의 보조 석축을 하였다. 또 비봉산성 성벽 기저부에서 각기 90~120㎝ 거리를 두고, 다시 냇돌과 자연석을 이용하여 3단으로 석축 해서 보강하였다.
비봉산성 주요 유물로는 토제 어망추 3점, 골석제 방추차 1점, ‘대(大)’자 명문와편 1점,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수막새 등이 있다.
[현황]
비봉산성은 과거 발굴했을 때 석축이 어느 정도 확인이 되었지만, 현재는 많은 부분이 흙으로 덮여 있어, 성벽 일부밖에 확인되지 않는다. 비봉산성 아래에 영주 순흥 어숙묘(榮州順興於宿墓), 영주 순흥 벽화고분(榮州順興壁畵古墳) 등이 분포하고 있으므로, 체계적인 관리가 요구된다.
[의의와 평가]
비봉산성 축조 상한 연대를 신라가 이미 급벌산군(及伐山郡)을 설치한 이후인 5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옛 순흥부 중심에 자리 잡은 비봉산성은 신라에 의해서 축조된 산성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