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359 |
---|---|
한자 | 榮州靑年會 |
영어공식명칭 | Yeongju Youth Association |
이칭/별칭 | 영주청년동맹 영주지부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개설]
영주청년회(榮州靑年會)는 1920년 6월 영주에서 조직된 실력양성론 입장에서 청년운동과 문화운동을 전개한 청년단체이다.
[설립 목적]
영주청년회는 적성 함양, 학문 증진, 체육발전, 의사교환, 풍속 교정 등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변천]
영주청년회는 1927년 11월 24일 전국적인 청년운동 혁신에 조응해 풍기청년회와 연합하여 영주청년동맹으로 확대·발전되었다. 이후 영주청년회는 영주청년동맹 영주지부로 변화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창립 초기 영주청년회는 강연회 및 토론회 개최 등 학술 활동, 야학 및 강습소 운영 등의 교육 활동, 정구와 축구 등 체육활동을 주로 전개하였다. 1923년 12월 개최된 ‘언변 양성에는 토론이냐 강연이냐’라는 주제 토론회는 이 무렵 영주청년회가 진행한 대표적인 학술 활동이다. 또 당시 술의 피해가 컸기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단주동맹(斷酒同盟)을 조직하였으며, 단주동맹의 결성 목적과 활동 방향을 적시한 취지서를 인쇄·배포하기도 했다.
영주청년회는 1924년 4월 서울에서 결성된 조선청년총동맹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조선청년총동맹은 전국적인 청년 단체 조직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또한, 1925년 2월 23일 조선청년동맹의 지방조직 강화 차원에서 개최된 경북청년대회준비회에도 영주청년회는 참가하지 않았다. 영주청년회는 1924년 이후 여러 청년 단체의 통합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1926년 이후 전국의 청년운동 단체가 군·부 단일동맹으로 전환되어가자, 1927년 11월 24일 풍기청년회와 함께 군 단위의 영주청년동맹으로 통합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주청년회는 1920년대 전국적으로 청년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결성될 때, 지덕체 함양과 단주운동을 전개하면서, 실력양성론에 입각한 문화운동을 지향하였다. 1920년대 중후반 청년운동의 변화에 맞추어 영주청년동맹 결성으로 이어질 때까지, 영주청년회는 영주 지역의 대표적 청년운동 단체로 자리매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