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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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강진선(姜進善)[1876~1908]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개항기의 의병장으로 대한제국 군인으로 복무하였다. 일제가 강제로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다음달 군대를 해산하자 의병에 투신하였으며, 안동, 진보, 청송, 의성 일원에서 이하현·박연백·유시연 등과 합세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4월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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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으로 청송의진에서 활약한 의병. 권복규(權復奎)[1850~1925]는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의병이다. 1896년 3월 청송향교의 향원으로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진용을 편성하는 등 실무를 담당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장(景章), 호는 송은(松隱). 1850년 12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석정마을에서 향림(香林) 권식(權湜)의 증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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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권성하(權成夏)[1852~1914]는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우익장(右翼將)으로 참여하여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와 청송의진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 활동에 참여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태언(泰彦), 호는 양파(良坡). 1852년 청송군 청송면 부곡리(釜谷里)[지금의 청송읍 부곡리]에서 아버지 권재기(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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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권유현(權有鉉)[1876~?]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유시연의진(柳時淵義陣)과 정해일의진(鄭海日義陣)에 가담하여 경상북도 안동(安東)·풍기(豊基)·순흥(順興) 등지에서 활약하다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본관은 안동(安東). 1876년 음력 2월 30일 경상북도 진보군(眞寶郡) 북면(北面) 흥구리(興丘里)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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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권탁수(權鐸洙)[1835~1909]는 1896년 3월 청송에서 심성지(沈誠之)를 창의장(倡義將)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이 결성되었을 때 백의종사(白衣從事)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순여(循汝), 호는 석정(石亭). 1835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서 태어났다. 권탁수의 가문은 안동권씨(安東權氏) 급사중공파(給事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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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김대락(金大洛)[1851~1905]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參謀) 및 중군장(中軍將)을 역임하였으며, 중군장으로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에 참여하여 크게 이겼다. 해산 이후 상경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여 융릉참봉(隆陵參奉)에 제수되었고, 을사늑약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후 김해부사(金海府使)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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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상길(金相吉)[1854~1927]은 1896년 심성지(沈誠之)의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가하여 좌익장(左翊將)에 이어 참모(參謀)로서 안덕면 감은리전투와 부동면[현 주왕산면] 상평리 화전등전투 등을 이끌었다.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림(景琳), 호는 약우당(若愚堂). 고려 개국공신 김훤술(金萱述)의 후예로 1854년 12월 20일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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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숭진(金崧鎭)[1850~1919]은 1896년 청송 유림들이 결성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서기(書記)로 종군하여 진중일지인 『적원일기(赤猿日記)』를 남겼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우현(禹鉉). 1850년 5월 27일 청송군 현서면 도동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정재학파(定齋學派) 석간(石澗) 서효원(徐孝源)의 문인이다. 1895년 을미사변(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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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완이(金完伊)[1881경~?]는 1906년 3월부터 4월 24일까지 이하현의진(李夏鉉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완이는 1881년경 경상북도 진보군 북면 병옥리[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경상북도 진보·영양 일대에서 활동하던 이하현의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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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의성(金義聖)[1880~1909]은 청송군 진보 출신으로, 신돌석의진에 참여하여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 안동 등지에서 일본군 헌병 1명을 비롯하여 일본군에 협조한 조선인을 처단하였으며,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경성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김의성은 1880년경 경상도 진보군(眞寶郡) 북면(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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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재수(金在洙)[1876~1909]는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일어난 산남의진(山南義陣)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포항 죽장면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하자 의성의 박연백(朴淵伯) 의진에 들어가 소모장(召募將)으로 영천, 안동, 신녕 등 여러 지역에서 군자금 확보에 주력하다 체포되어 1909년 4월 교수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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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의병. 김종달(金鍾達)[1864~1909]은 청송 출신의 의병으로 1906년 창의한 신돌석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1909년 8월 11일 현서면 백자리에서 체포되어 총살, 순국하였다. 김종달은 1864년 경상북도 진보군(眞寶郡) 동면(東面)백자리(柏子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백자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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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진구(金鎭九)[1854~1914]는 1896년 3월 경상북도 청송에서 일어난 심성지(沈誠之)의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가하여 외방장(外防將)으로 청송군 현서면의 행정과 치안을 맡아 활동하였다. 김진구는 1854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이명으로는 김진방(金鎭方)이라고도 하였다. 청송 유림들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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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진영(金震榮)[1876~1921]은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장영집사(將營執事)에 이어 군문집사(軍門執事)로 활동하였고, 1908년 청송 동부진 서종락(徐鍾洛) 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중옥(重玉), 호는 벽초(碧樵), 이명은 김해영(金海榮). 1876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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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태진(金泰鎭)[1828~1904]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에 저항하는 항일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나자, 1896년 3월 청송 향회(鄕會)에서 유림들과 함께 창의를 결의하고 심성지(沈誠之)를 대장으로 추대하여 청송의진(靑松義陣)을 결성하였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형언(亨彦), 호는 만회당(晩晦堂). 182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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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두희(南斗熙)[1850~1924]는 1896년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우익장(右翼將)으로 활동하였다. 청송의진의 창의 초기에 참여하여 해산할 때까지 지휘부를 이끌고 경상북도 청송·경주·영덕 등지를 전전하며, 각처 의병진과 연합하여 불굴의 항전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극중(極中).1850년 1월 29일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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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복수(南福洙)[1880~1931]는 1906년 3월 영양남씨(英陽南氏) 일족인 남석우(南錫祐) 등과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과 군수품 수집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부상을 입고 귀향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경도(景都). 이명은 남수복(南洙卜). 1880년 5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 523번지에서 아버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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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의병. 남상현(南相鉉)[1861~1942]은 1896년 창의[국난을 당하였을 때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킴]한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서기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국필(國弼), 호는 당파(棠坡). 1861년 12월 2일 경북 청송군(靑松郡) 현동면(縣東面) 개일리(開日里)에서 아버지 삼계(三溪) 남용하(南龍夏)와 어머니 의성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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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광(南錫光)[1881~1952]은 1906년 3월 남석우, 남석인 등과 함께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장 최세윤이 소부대를 단위로 한 유격전을 전개하자 청송으로 귀향하여 서종락부대에 참여하였다. 1910년 고와실전투에서 패한 뒤, 각처를 전전하며 은신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이박(而珀). 188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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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구(南錫球)[1875~1911]는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진에 참가하였다가 1908년 3월 산남의진의 3대 대장 최세윤 휘하의 청송 서부 지역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응서(應瑞). 1875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아버지 남광하(南光夏)와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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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술(南錫述)[1872~1907]은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입진하여 감은리 전투를 수행하였고, 1907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들어가 청송·흥해·영덕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영덕 유암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경숙(敬叔), 이명은 남경규(南景圭). 1872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아버지 남문철(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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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석우(南錫佑)[1869~1906]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의병 해산 이후 각처에서 활동하던 화적(火賊) 토벌에 참여하여 약포장(約砲將)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우익장(右翼將)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사망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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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우(南錫祐)[1871~1933]는 1906년 3월 산남의진에 참여하였으며, 1908년 2월경 편성된 남석구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덕여(德汝). 1871년 9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 327번지에서 아버지 남성하(南成夏)와 어머니 전주유씨(全州柳氏) 사이에서 4남 3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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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석인(南錫仁)[1878~1907]은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하였고, 1906년에는 산남의진에 참여하여 청송 지역 소모장(召募將)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우팔(禹八), 이명은 남우팔(南又八). 1878년(고종 18)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동면(縣東面) 도평리(道坪里)에서 태어났다. 1896년 의병이 전국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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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태(南錫台)[1879~1961]는 1896년 경상북도 영천 신녕의 화산의진(華山義陣)과 1906년 3월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장 최세윤이 소부대를 단위로 한 유격전을 전개하자 청송으로 귀향하여 서종락부대에 참여하였다. 1910년 청송 고와실전투 패전 후 은신 생활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본관은 영양(英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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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승철(南升喆)[1851~1922]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사병도총(司兵都摠)으로 군사훈련과 군율을 담당하였다. 특히 의병의 폐단을 진무하고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흥해(興海)로 출진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5월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 이후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와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에 참여하여 각처 의병진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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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승하(南昇夏)[1872~1907]는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과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6년 4월 산남의진 대장 정용기(鄭鏞基)가 체포된 뒤 귀향하였다가, 1907년 4월 정용기가 재기하자 청송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우성(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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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정철(南井喆)[1888~1970]은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종사(從事)로 활동하였으며. 1908년 2월 의병장 최세윤(崔世允)이 소부대 단위로 유격전을 전개하자, 청송으로 귀향하여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의 종사로 의병 항전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극삼(極三), 호는 청강(靑江), 이칭은 남정철(南定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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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모충이(牟沖伊)[1883~1960]는 1906년 3월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산남의진의 대장 정용기에 이어 대장 정환직(鄭煥直)마저 순국하자 1908년 3월 청송 보현산(普賢山)으로 들어가 최세윤(崔世允)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평(咸平), 이명은 모준이(牟俊伊). 1883년 4월 4일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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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민동호(閔東鎬)[1874~1938]는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였으며, 4월 29일 참모(參謀)에 선임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숙경(叔京), 호는 효강(曉岡). 1874년 9월 29일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민치호(閔致澔)와 어머니 월성이씨(月城李氏) 사이에서 4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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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민성호(閔晟鎬)[1836~1908]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백의종사(白衣從事)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지(成之), 호는 청당(靑棠). 1836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산곽(山郭) 민치박(閔致博)과 어머니 상락김씨(上洛金氏)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880년 증광시(增廣試)에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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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민인호(閔仁鎬)[1854~1925]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척후장(斥候將)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일(文一), 호는 낙산(樂山). 1854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민치벽(閔致璧)과 어머니 함안조씨(咸安趙氏)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선 세종 때 청송군 안덕현 현내면 당저(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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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박수찬(朴壽燦)[1867~1922]은 1906년 3월 처남 신돌석(申乭石)과 함께 경상북도 영덕에서 영릉의진(寧陵義陣)을 일으키고 참모장(參謀將)으로 활동하던 중 체포되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 박덕술(朴德述)의 지극한 효행으로 풀려났다.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양정(養亭). 1867년 10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월전리에서 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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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 출신의 의병. 박용태(朴容台)[1888~?]는 경상북도 진보에서 신돌석의진에 참여한 이후 1908년 음력 3월 17일경 이 참봉 등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진보군 남면 감곡동(甘谷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용태는 1888년경 경상북도 진보군 상리면(上里面)[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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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배연집(裵淵集)[1878~1953]은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장영수위(將營守衛)를 역임하였으며, 1908년 2월부터 서종락(徐鍾洛)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원서(元序), 이명은 배연집(裵淵楫) 혹은 배상언(裵尙彦). 1878년 5월 5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하속리 925번지에서 아버지 배선화(裵善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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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배희직(裵熙稷)[1868~1942]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陳)에 군자금 50금을 의연(義捐)한 의병이자 부호였다.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경래(敬來). 다른 이름으로 배희직(裵凞稷)을 사용하였다. 1868년 3월 29일 경북 청송군 부동면[현 주왕산면] 상평리 1225번지에서 아버지 낙은(樂隱) 배학순(裵㶅舜)과 어머니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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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서고락(徐高洛)[1867~1909]은 신돌석(申乭石)의진(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다가 1909년 8월 11일 진보군 동면 백자동(柏子洞)에서 체포되었다. 영덕경찰서로 압송되던 중, 영덕군 동면 주동(酒洞) 산간에서 도주를 시도하다 호송하던 경찰의 총격을 받고 순국하였다. 서고락은 경상도 청송도호부 남면 마평(馬坪)[지금의 경상북도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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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서종락(徐鍾洛)[1874~1940]은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청송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으며, 창의(倡義) 이후에는 1차 산남의진의 후봉장(後鋒將)에 이어 선봉장(先鋒將)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에는 청송 지역 유격대를 맡아 활동하였다. 특히 제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이 지역 분대를 중심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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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서효격(徐孝格)[1855~1936]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서기(書記)에 선임되어 각종 문서를 담당하며 『적원일기(赤猿日記)』를 기록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순가(順可), 호는 오산(午山). 1855년 12월 26일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서 아버지 서운희(徐運熙)와 어머니 진성이씨(眞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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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서효달(徐孝達)[1839~1904]은 청송향교의 향원(鄕員)으로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군량을 수합하고 군사를 소모하는 등 한말 국권회복을 위한 구국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덕언(德彦). 1839년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서 아버지 화오(花塢) 서병화(徐炳華)와 어머니 전주유씨(全州柳氏)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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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서효신(徐孝信)[1848~1915]은 1896년 1월 예안의진(禮安義陣)의 청송 소모장(召募將)으로 참여하였다. 같은 해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이 창의(倡義)하는 과정에서 귀향하여 소모장, 우익장(右翼將)을 맡아 하였고, 5월에는 부동외방장(府東外防將)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달오(達五), 호는 현연(玄淵), 이명은 김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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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서효원(徐孝源)[1839~1897]은 1896년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陳)의 결성을 주도하였으며, 청송의진의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에 선임되는 등 창의 때부터 해산할 때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백순(百順), 호는 석간(石澗). 1839년 9월 25일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서 아버지 서문희(徐文熙)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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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신동호(申東鎬)[1842~1920]는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參謀)에 선임되어 청송의진의 편제를 정비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백(敬伯). 1842년 청송군 현서면 복리[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복리]에서 안동 유생 이야순(李野淳)의 문인이었던 부호군(副護軍) 신홍운(申弘運)과 어머니 함양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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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신상익(申相翼)[1852~1919]은 1896년 4월 창의(倡義)한 진보의진(眞寶義陣)의 부장(副將)으로 활동하였다. 창의장(倡義將) 방산(舫山) 허훈(許薰)을 대신하여 진보의진의 업무와 전략을 전담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보(敬輔), 호는 가천(可川). 1852년 3월 19일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서 아버지 사은(泗隱) 신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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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신익한(申翊漢)[1838~1906]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한보(漢輔). 1838년 청송군 현서면 복리[지금의 안덕면 복리]에서 아버지 신병호(申炳浩)와 어머니 여강이씨(驪江李氏) 사이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익한은 1896년 창의(倡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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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신필호(申弼鎬)[1834~1900]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이 창의(倡義)하는 과정에서 청송향교(靑松鄕校)의 교장(校長)으로서 향교의 향원(鄕員)을 소집하여 향회(鄕會)를 개최하는 등 창의를 지원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은수(殷叟), 호는 만음(晩陰). 1834년 청송군 현서면 복리[지금의 안덕면 복리]에서 아버지 소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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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관지(沈灌之)[1834~1899]는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서효원(徐孝源)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1834년 청송군 현서면 복리[지금의 안덕면 복리] 101에서 태어났다. 고려 후기 충혜왕(忠惠王) 때 전리판서(典理判書) 악은(岳隱) 심덕부(沈德符)의 6세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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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능규(沈能奎)[1850~1897]는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參謀)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성오(星五), 호는 국포(菊圃). 1850년 4월 7일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성재(省齋) 심면지(沈冕之)와 어머니 함안조씨(咸安趙氏)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집에서 공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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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능장(沈能璋)[1855~1903]은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척후(斥候)로 활동하다가 소모장(召募將)에 임명되었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위옥(韋玉). 1855년 8월 5일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낙지(沈洛之)와 어머니 경주김씨(慶州金氏)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심능장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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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심능찬(沈能璨)[1859~1903]은 1896년 3월 결성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창의장(倡義將) 심성지(沈誠之)의 아들로 자제군관(子弟軍官)에 임명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경방(景方). 1859년 2월 25일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소류(小流) 심성지와 어머니 함안조씨(咸安趙氏)의 2남 중 차남으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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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성지(沈誠之)[1831~1904]는 1896년 결성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창의장(倡義將)으로 추대되어 의병진의 결성과 진용의 정비, 그리고 의병 활동 등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사행(士行), 호는 소류(小流). 1831년 12월 18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하수(沈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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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심의봉(沈宜鳳)[1875~1927]은 유생(儒生) 신분으로 안동 지역에 파견되어 정세를 파악하여 보고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1875년 5월 25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 116번지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 충혜왕(忠惠王) 때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악은(岳隱) 심덕부(沈德符)의 6세손으로 조선 단종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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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의식(沈宜植)[1860~1937]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서기(書記)에 선임되어 각종 문서를 담당하며 진중일기를 기록하였다. 1911년 망명지를 물색하기 위해 서간도(西間島)를 여행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경립(景立), 호는 노산(老山). 1860년 7월 18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에서 아버지 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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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의철(沈宜喆)[1870~1931]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부서외방장(府西外防將)에 임명되어 휘하에 친군을 거느리고 각 면 지역의 방어와 치안을 담당하면서 본진을 후원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경팔(景八), 이명은 심의주(沈宜柱). 1870년 11월 30일 청송군 청송읍 덕리에서 아버지 심능부(沈能溥)와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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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심의택(沈義澤)[1862~1910]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이 군비를 효율적으로 모집하고 운용하기 위해 지휘부의 편제를 정비할 때 서기로 임명되어 각종 문서를 관장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예백(禮伯), 호는 묵암(黙菴). 1862년 7월 7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의성(沈宜聖)과 어머니 함안조씨(咸安趙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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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심의화(沈宜華)[1840~1921]는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장재도청(掌財都摠)에 선임되어 군량을 수합하고 군사를 소모하는 등 군세 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성삼(聖三), 호는 금계(琴溪). 1840년 7월 8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에서 아버지 심능린(沈能麟)과 어머니 함안조씨(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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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심진택(沈瑨澤)[1866~1933]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유생으로 안동의진(安東義陣)에 파견되어 연락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군옥(君玉). 1868년 11월 8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에서 아버지 금계(琴溪) 심의화(沈宜華)와 어머니 숙부인(淑夫人) 김해김씨(金海金氏)의 5형제 중 3남으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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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오세로(吳世魯)[1852~1900]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장(參謀長)으로 군량미를 수합하고 의병을 훈련시키면서 의병의 군세를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성국(聖國), 호는 인산(仁山). 1852년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에서 아버지 오정화(吳正和)와 어머니 아주신씨(鵝洲申氏)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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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우영조(禹永朝)[1870~1963]는 1906년 3월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진보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다. 1907년 10월 9일 입암전투(立巖戰鬪) 이후, 서종락(徐鍾洛)과 함께 청송 지역 유격대를 맡아 활동하였다. 제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이 지역 분대를 중심으로 한 유격전을 구상하자 청송동부진을 맡아서 불굴의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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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윤기열(尹基烈)[1878~1917]은 1906년 3월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창의 과정에서 지례(知禮)·고령(高靈)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으며, 그 후 2초장(哨將)·도포장(都砲將) 등을 맡았다. 1908년 1월 이후에는 이세기(李世紀)의 휘하에서 포항 장기읍(長鬐邑)을 공격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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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본관은 파평(坡平). 이명 윤은도(尹殷道). 경상북도 청송군 부내면에서 태어났으며 청송의진(靑松義陣)의 통인(通引)으로 활동하였다. 윤삼업(尹三業)[1875~1953]은 1875년 7월 13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내면에서 태어났다.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고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단발령(斷髮令)을 공포하자, 전국 각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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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출신의 의병장. 윤정우(尹楨禹)[1848~1902]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서기(書記) 및 전방장(前防將)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무일(無逸). 1848년 경북 청송군 부동면[현 주왕산면] 라리 604에서 아버지 윤태영(尹泰永)과 어머니 구산박씨(龜山朴氏)의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06년 예조판서(禮曹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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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윤학이(尹學伊)[1873~?]는1908년 6월 경상북도 영덕에서 창의한 신돌석 의진(申乭石義陣)에 입진하여 울진, 영해, 청송, 영양 등지에서 군량미와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 강제 체결에 격분한 신돌석은 1906년 3월 13일 경상북도 영덕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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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윤효업(尹孝業)[1849~1901]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서기로 활동하면서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와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에 파견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원(百源). 1849년 8월 22일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234에서 아버지 윤종칠(尹宗七)과 어머니 송생윤씨(松生尹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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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이기찬(李起璨)[1853~1908]은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나 의흥·상주 등에 거주하였던 유생으로, 1896년 3월 경상북도 김천에서 창의하여 김산의진(金山義陣)의 창의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김산의진 해산 후 충청북도 영동군 문의(文義)에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며 은거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능(敬能), 호는 지산(止山)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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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이석이(李石伊)[1879~1910]는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산남의진의 정용기(鄭鏞基) 대장이 전사하자 독자적으로 의병을 이끌고 일본인 및 친일파 처단과 군자금 징수 활동을 펼치다 체포되어 1910년 3월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10년 당시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 거주하였던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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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이수목(李守睦)[1887~1909]은 1907년경 신돌석(申乭石)의진(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8월 11일 경상북도 진보군 동면에서 영덕경찰서 순사대에게 붙잡혀 압송되던 도중 피살되었다. 이수목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 출신이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 및 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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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이의수(李宜洙)[1838~1907]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1838년 12월 8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이진규(李鎭奎)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의수는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하였다. 1896년 3월 8일 안동의진(安東義陣)의 소모장(召募將)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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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이지영(李之榮)[1844~1904]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參謀)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1844년 11월 19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덕성리에서 이만협(李萬協)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지영은 1896년 3월 청송의진의 참모로 활동하였다. 1896년 3월 8일 안동의진(安東義陣)의 소모장(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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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현규(李鉉圭)[1874~1917]는 1905년 11월 청송군 주왕산(周王山) 대전사(大典寺)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 1906년 청송군 진보읍 오누지전투 참전과 울진군 죽변읍 왜관 격파 등으로 큰 전과를 거두었으나, 1908년 일본군의 추격과 고종의 의병 해산령 등으로 의진을 해산하고 은거하였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하현(夏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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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임영수(林永洙)[1881~?]는 1907년 8월부터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에 참여하여 1908년 12월까지 일본군과 교전하거나 군수품을 수집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나주(羅州). 1881년경 경상북도 청송군 현남면[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서 태어났다. 임영수는 1907년 8월부터 이강년의진에 참여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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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장무호(蔣武鎬)[1852~1926]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후방장(後方將)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공언(拱彦). 1852년 11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에서 아버지 장재명(蔣在明)과 어머니 월성이씨(月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경상북도 의성 출신인 문익공(文翊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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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장한탁(蔣漢倬)[1852~1930]은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한 유생이다. 안동의진의 송천도회에 참가하여 안동의진을 비롯한 주변 의병진의 정세를 파악하여 보고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경장(景章), 호는 근재(芹齋). 1852년 1월 1일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장발호(蔣發鎬)와 어머니 안동김씨(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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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정진도(鄭鎭燾)[1852~1903]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진무장(鎭撫將)으로 5월 14일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에서 크게 이겼다. 그리고 청송의진이 면군체제(面軍體制)로 전환한 뒤 부장(副將)에 임명되어 경주성전투(慶州城戰鬪), 영덕전투(盈德戰鬪), 화전등전투(花田嶝戰鬪)를 수행하는 등 불굴의 항전을 전개하였다.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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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공곡(曺功谷)[?~1908]은 1907년 4월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입진하여 포술장(砲術將)으로 활동하였다. 정환직(鄭煥直) 대장 휘하에서는 포군초장(砲軍哨長) 및 부장(副將)으로 흥해·영덕 등지에서 순사주재소(巡査駐在所)를 습격하고 일본인 순사들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다 순국하였다. 조공곡은 19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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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광규(趙光奎)[1851~1927]는 1896년 3월 청송의진의 참모로 선임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명서(明瑞), 호는 간은(磵隱). 1851년 9월 5일 청송군 청송면 송생리에서 아버지 조성종(趙性宗)과 어머니 전의이씨(全義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질이 총명하여 재주와 학식으로 문명을 떨쳤다. 정절공(貞節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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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조규락(趙奎洛)[1835~1909]은 1896년 3월 결성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지휘사(指揮使)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중서(中瑞), 호는 옥하(玉下). 1835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조성안(趙性安)과 어머니 고성이씨(固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후예로 입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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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규명(趙圭明)[1860~1935]은 1896년 김도화(金道和)가 이끄는 안동의진(安東義陣)에 입진하여 경북상도 북부 지역 7읍 연합의진(聯合義陣)이 추진한 함창 태봉전투(胎封戰鬪)에 참전하였으며, 의관(議官)을 지냈다. 조규명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에 분노하여 경상북도 안동 지방에서 김도화가 이끄는 안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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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규진(趙奎震)[1850~1903]은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학맥을 계승한 긍암(肯菴) 이돈우(李敦禹)의 문인이다.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유생(儒生)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하서(夏瑞), 호는 수암(守菴). 1850년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서 아버지 조성홍(趙性弘)과 어머니 광주안씨(廣州安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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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근백(趙根伯)[1872~1908]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일으킨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참모장(參謀將)이 되어 의진을 이끌었다. 그 뒤 1907년 10월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일본군에게 패하고 은신하였다가 1908년 6월 자택에서 일본군에게 피살당해 순국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이명은 조근백(趙勤伯)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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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능호(趙陵祜)[1852~1925]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의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성여(聖汝), 호는 연잠(蓮岑). 1852년 1월 17일 청송군 현동면 인지리(印支里)에서 아버지 일산(逸汕) 조기술(趙基述)과 어머니 월성이씨(月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능호는 개항기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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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조독호(趙篤祜)[1843~1914]는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참모(參謀)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주용(周用), 호는 회간(晦磵). 1843년 11월 6일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서 동추(同樞) 조경방(趙景滂)의 현손으로 아버지 조기유(趙其宥)와 어머니 영양이씨(永陽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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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성규(趙誠奎)[1853~1926]는 1896년 3월 청송향교(靑松鄕校)의 향원(鄕員)으로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진용을 편성하는 등의 실무를 담당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공진(公振) 혹은 서구(瑞九). 1853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조성묵(趙性黙)과 어머니 월성손씨(月城孫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재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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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청송 출신 의병장 겸 독립운동가. 조성길(趙性吉)[1860~1917]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창의 과정에서 격문을 발송하여 창의를 독려하였으며, 청송의진의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를 비롯하여 경주성전투(慶州城戰鬪), 영덕전투(盈德戰鬪), 화전등전투(花田嶝戰鬪) 등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진(山南義陣)을 후원하였다.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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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조성눌(趙性訥)[1835~1902]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창의 과정에 참여하여 백의종사(白衣從事)로 활동하였으며, 향도청(鄕都廳)을 맡아 군량미의 출입을 주관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탁성(琢成). 1835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두현리에서 아버지 조윤호(趙倫祜)와 어머니 달성서씨(達城徐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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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조성로(趙性魯)[1839~1908]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참모(參謀)로 선임되었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종수(宗叟), 호는 휘산(輝山). 1839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서 아버지 조진호(趙進祜)와 어머니 월성손씨(月城孫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후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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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조성박(趙性璞)[1845~1904]은1896년 3월 결성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부장(副將) 및 현서면 외방장(外防將)에 임명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형옥(荊玉), 호는 영담(嶺潭). 1845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조섬호(趙暹祜)와 어머니 평산신씨(平山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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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군 진보면으로 이거하여 진보의진을 결성한 유학자이자 의병장. 허훈(許薰)[1836~1907]은 근기남인(近畿南人)의 학풍과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유학자이자, 1896년 경상북도 진보에서 창의하여 진보의진(眞寶義陣)을 결성한 의병장이다. 허훈은 전답 3천여 마지기를 팔아 아우 허위의 의병 활동을 지원하였다. 개항기 의병 활동을 통해 국권회복을 위한 구국운동에...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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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으로 이주한 독립운동가. 권영만(權寧萬)[1877~1950]은 일찍이 의병에 참여하였고, 1915년 음력 1월 결성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후원하는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주비단(籌備團)의 결성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0년 임시정부의 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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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용이(權龍伊)[1903~1972]는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안동군 임동면 편항시장(鞭巷市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고, 시위 군중들과 함께 일제 통치기구인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용구(龍九), 호는 송담(松潭). 1903년 1월 4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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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으로 흠치교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권중호(權重浩)[1887~1924]는 흠치교(吁哆敎)에 입교하여 조선의 독립을 기도하고, 교도 모집 및 군자금을 모금하여 교세의 확장을 도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1887년 9월 7일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廣德里) 357번지에서 태어났다. 권중호는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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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수(金基洙)[1859~1925]는 1919년 3월 26일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뒤 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렀다. 김기수는 개신교 장로파 전도 조사(助師)로 전도 활동을 하던 중 서울에서 시작된 3.1독립만세운동이 경상북도 각 지역에서도 곧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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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용(金基庸)[1883~1938]은 1919년 3월 25일의 청송 진보시장 만세시위운동, 3월 26일의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그리고 1928년의 3월 장진홍(張鎭弘)의 영천경찰서 폭파의거에 참여하였다.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명숙(明淑) 또는 사실(士實), 호는 능백(能伯), 이칭은 김명숙(金明淑).188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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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달희(金達熙)[1890~1977]는 1920년 음력 8월 경상북도 청송에서 흠치교(吽哆敎) 8인조에 입교하여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김달희는 1920년 음력 8월 청송 본가에서 치성(致誠)을 올리고 흠치교(吽哆敎) 8인조에 입교하였다. 흠치교는 전라북도 정읍에 본부를 두었으며,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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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두진(金斗鎭)[1873~1944]은 청송군 진보 출신으로 1913년 안동 출신 의병장 유시연(柳時淵)의 지휘 아래 경상북도 안동·영양·영주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잡혀 징역 15년의 옥고를 치렀다. 김두진은 1912년경부터 유시연의 지휘 아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안동 출신 유시연은 1896년 1월 안동의진(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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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및 현대 청송 출신의 행정가. 김만천(金萬千)[1894~1975]은 일찍이 서울에서 경성공업학교(京城工業學校)를 졸업하고 면서기, 일제 경찰 등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민족의식에 눈을 뜨면서 3.1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기도 하였다. 1927년 이후 안덕면 면장으로 근무하며 학교 설립에 힘을 기울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신국가 건설에 참여하여 청송 지역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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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민춘기(閔春基)[1922~생존]는 1922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大阪]와 교토[京都]에서 수학하였고, 학업 도중 교토한국인유민생회[京都韓國人留民生會]에 가입하여 민족의식을 키웠다. 민춘기는 1939년경부터 신문점 배달원으로 활동하면서 동지들과 회합하며 독립의식 고취와 비밀결사 조직에 노력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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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무여(武汝). 1927년 8월 29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 828번지에서 아버지 박해진(朴海振)과 어머니 김시목(金時睦) 사이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박동열(朴東烈)[1927~2008]은 1935년 4월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의 임하공립보통학교(臨河公立普通學校)에 입학하였으며,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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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산(朴永山)[1887~1931]은 일제 관헌의 기록에 한자 이름이 박영산(朴榮山), 박영산(朴英山)으로도 남아 있다. 또한 박병곤(朴炳坤), 박용찬(朴容讚)이라는 이명을 쓰기도 하였다. 1887년 1월 2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월전리에서 태어났고, 1910년대 초에 만주로 망명하여 부민단(扶民團), 서로군정서(西路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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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주한(朴柱翰)[1893~1923]은 1920년 음력 7월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오산동(梧山洞) 오항산 제실(祭室)에서 치성을 하고 차경석(車京錫)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다 잡혔으나 면소(免訴) 처분으로 풀려났다. 박주한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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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춘식(朴春植)[1928~1987]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안동농림학교 제10기 재학 중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박춘식은 1928년 1월 16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서 태어났다. 안동농림학교 제10기 학생으로 입학하여 1944년 10월 말 조선회복연구단에 가입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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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동환(申東煥)[1891~1958]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하는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1891년 1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신동환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에 가입하여, 겉으로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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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두환(申斗煥)[1880~1958]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하는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1880년 11월 30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381번지에서 태어났다. 신두환은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에 가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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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범희(申範熙)[1892~1929]는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신범희는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1892년 3월 13일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7월경 차경석(車京錫)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겉으로 종교 활동을 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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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상두(申相斗)[1871~1969]는 1919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선두에서 주동하다가 잡혀 징역 1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청송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5일 청송군 진보장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신상두는 청송군 파천면 출신으로 이웃 고을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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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상선(申相宣)[1887~1969]은 1920년 음력 8월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였다. 신상선은 흠치교에서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 활동으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었지만, 대구복심법원의 면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신상선은 1920년 음력 8월경 청송에서 흠치교 8인조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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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상용(申相鎔)[1876~1925]은 1920년 음력 7월 흠치교(吽哆敎)에 입교하여 흠치교의 힘으로 국권을 회복한다는 신념으로 교도 조직과 독립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잡혀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신상용은 상위자인 신규환(申圭煥)의 권유를 받아 1920년 음력 7월 청송군 합강리 마을 거주지에서 치성(致誠)을 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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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철희(申喆熙)[1895~1965]는 1920년 음력 8월 청송에서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다 잡혔으나 1921년 11월 대구복심법원의 면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본관은 평산(平山).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예로 1895년 7월 4일 신상기(申相琦)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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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태휴(申泰烋)[1870~1931]는 1919년 3월 26일 조현욱(趙炫郁)과 함께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본관은 평산(平山). 이명은 신태걸(申泰杰). 1870년 8월 3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무계리에서 출생하였다. 신태휴는 전국 각지에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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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송(靑松). 창씨명은 청전훈(靑田勳). 1929년 1월 16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상만(沈相万)과 어머니 의성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6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김헌춘(金憲春)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다. 1942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의 파천국민학교(巴川國民學校)를 졸업하고, 1942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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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우택락(禹宅洛)[1878~1946]은 1920년 음력 7월 경상북도 청송에서 흠치교(吽哆敎) 8인조에 가입하여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우택락은 면서기(面書記)로 재직하던 중 1920년 음력 7월 청송 진보에서 흠치교 8인조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흠치교는 종교를 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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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坡平). 창씨명은 송강동행(松岡東幸). 1927년 11월 20일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면 월막동에서 아버지 윤자기(尹滋琦)와 어머니 영해박씨(寧海朴氏) 박근이(朴根伊) 사이에서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큰아버지 윤자영(尹滋瑛)은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학생지도부 일원이었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滿洲總局)과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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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성택(尹成澤)[1926~1957]은 16세 때인 1941년 6월부터 일본 교토[京都]의 토목공사장에서 일하던 중 동포 공원(工員)인 동지들과 함께 만 3년 동안 독립운동을 은밀히 벌이면서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준비하다 체포되어 1여년 간 옥고를 치렀다. 1926년 5월 2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이현동(泥峴洞) 170번지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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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자영(尹滋瑛)[1894~1938]은 20대 중반 때 서울에서 3.1 독립만세운동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고 나온 후, 초기 청년운동 및 사상운동 대오의 선두에서 활동하다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들어가 곧 중요 인물이 되어, 국민대표회의 때 개조파(改造派)의 거두로 활약한 후 청년동맹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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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백(李起白)[1899~1971]은 1920년 음력 7월 흠치교(吽哆敎)에 입교하여 독립자금 모집과 교세 확장에 노력하다 잡혔으나 1921년 11월 대구복심법원의 면소(免訴) 판결로 풀려났다. 이기백은 1920년 음력 7월 청송 본가에서 치성(致誠)을 하고 흠치교에 들어갔다. 흠치교의 본부는 전라북도 정읍에 있었고,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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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순(李琦淳)[1918~1999]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41년부터 도쿄[東京]에서 민족의식 고취와 동지 규합에 힘쓰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1943년 체포되어 옥고를 겪고, 고문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오랫동안 앓았다. 호적명은 이명수(李明秀), 창씨명은 벽산명수(碧山明秀), 호는 천애(天涯). 1918년 3월 19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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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서화(李瑞和)[1885~?]는 한족회 회원으로 국내로 잠입하여 고향인 청송을 비롯하여 안동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서화는 1885년 11월 8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목계리(木溪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으로 이동화(李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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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이세기(李世紀)[1882~1911]는 1896년 심성지(沈誠之)의 청송의진(靑松義陣)에 들어가 활동하였고, 1906년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였으며, 1908년 최세윤(崔世允) 대장이 잡힌 뒤부터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1909년 7월 일본군에게 잡혀 3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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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형(李瀅)[1886~1949]은 1919년 3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형은 일찍부터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반대하며 조선의 독립을 갈망하였다. 그러던 중 조현욱(趙炫郁)과 신태휴(申泰烋) 등이 1919년 3월 26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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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임용상(林龍相)[1877~1954]은 1905년 의병을 일으킨 뒤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합류하여 활동하다가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이끌었다. 1908년 이후 청도, 청송,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잡혀 10여 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출옥 후 의열단(義烈團)과 독립군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나주(羅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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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규영(趙奎永)[1897~1950]은 흠치교(吁哆敎)에 가입하여 일제로부터 독립을 기도하고, 교도(敎徒) 모집 및 자금을 모집하여 교세의 확장을 도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본관은 함안(咸安). 1897년 2월 28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내면[지금의 현서면] 두현리 375번지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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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병국(趙柄國)[1883~1955]은 1919년 3월 26일 조현욱(趙炫郁), 신태휴(申泰烋) 등과 같이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튿날 다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조병국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무렵, 조현욱으로부터 궐기를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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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성태(趙性台)[1858~1928]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4월 29일 참모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응삼(應三), 호는 존심정(存心亭). 다른 이름으로 조성대(趙性臺)를 사용하기도 했다. 1858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長田里)에서 아버지 조연식(趙蓮植)과 어머니 오천정씨(烏川鄭氏)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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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옥제(趙玉濟)[1923~1999]는 1923년 5월 24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34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39년 4월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에 입학하였으며, 1941년 3학년 재학중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비밀결사 문예부(文藝部)에 가입하였다. 문예부는 일찍부터 민족의식이 담긴 역사와 문학 관련 서적을 읽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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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원(趙鏞元)[1899~1979]은 1920년 흠치교(吘哆敎)에 들어가 경상북도 청송 일대에서 교도 모집과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조용원은 1920년 음력 9월 흠치교에 입교하였다. 흠치교는 전라북도 정읍에 본부를 두고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표면적으로는 종교 활동을 하였으나 실제로는 한국 독립을 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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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학이(趙學伊)[1890~1953]는 1919년 3월 21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中平洞) 편항(鞭巷)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경상북도 안동군에서도 안동읍과 예안읍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이웃한 임동면에서는 유연성(柳淵成) 등이 3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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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현욱(趙炫郁)[1854~1922]은 1919년 3월 26일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목산(牧山). 1854년 1월 2일 대구 성당동(聖堂洞)에서 아버지 조경화(趙敬和)와 어머니 경주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태어나 조명화(趙命和)에게 입양되었다.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