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169
한자 加平懸燈寺銅鐘
이칭/별칭 현등사동종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길 34[운악리 산16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허은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619년(광해군 11)연표보기 - 가평 현등사 동종 제작
이전 시기/일시 한국전쟁 시기 - 가평 현등사 동종 봉선사에서 현등사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2012년 12월 27일연표보기 - 가평 현등사 동종 보물 제179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가평 현등사 동종 보물 재지정
현 소장처 현등사 극락전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길 34[운악리 산163]지도보기
원소재지 가평 현등사 동종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부평리 255]
성격 범종
재질 철(鐵)
크기(높이, 길이, 너비) 73.5cm
소유자 현등사
관리자 현등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범종.

[개설]

가평 현등사 동종현등사의 본사인 남양주 봉선사에 봉안되어 있다가 한국전쟁을 계기로 현등사로 옮겨왔다. 종의 외형은 전체적으로 조선 전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중국 범종 양식을 모방하였으나, 종신의 유곽(乳廓)과 중·하대 문양 등 부분적으로 한국 종의 문양 요소가 다분히 반영된 조선 중기 한·중 혼합 양식의 모범적인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형태]

가평 현등사 동종은 73.5cm의 아담한 크기로, 종신(鍾身)을 여러 개의 구획선으로 나누고 그 안에 연잎무늬, 당초무늬, 파도무늬 등을 화려하게 새겨 넣어 장식성을 강조한 범종이다. 종의 고리 부분은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서로 역방향으로 향하는 일체쌍두(一體雙頭)의 용뉴(龍鈕)를 형성하여 안정감을 주고, 두발을 힘차게 내딛어 천판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서 역동감을 느낄 수 있다. 둥근 곡면을 이루는 천판에서부터 종의 입으로 내려오면서 조금씩 그 폭을 넓힌 종의 형태도 아름답다. 종의 몸체는 종구 지름이 다소 넓게 조형되어 풍만한 비례감을 느낄 수 있으며, 중간 높이에 3조의 융기선을 돌려 상하로 크게 구획된 모습이다. 특히, 종의 중심부에 새겨진 무늬의 화려하고 장엄적인 요소는 조선 전기의 왕실 발원 범종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원래 가평 현등사 동종을 소장했던 봉선사 또한 왕실의 원찰이었기 때문에, 이전에 만들어진 궁중 양식 범종의 여러 가지 요소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특징]

가평 현등사 동종은 본래 있던 봉선사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법당이 소실되자, 1613년(광해군 5)에 다시 중수하고, 1619년(광해군 11)에 범종을 주성하여 소장하여 왔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 봉선사가 위험해지자 말사인 현등사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종의 배 부분에는 반듯한 해서체로 주종기(鑄鐘記)를 돋을새김하였다. 주종기에는 종을 만들게 된 연유, 종 제작에 사용된 재료의 양과 무게, 발원하는 내용, 참여한 사람 등을 질서 있게 적었다. “봉선사종명병서 만력사십칠년기미사월십일일 화주 천보 근작 녹화 비구 현옥 정회 대원 영인(奉先寺鍾銘幷序 萬曆四十七年己未四月十一日 化主 天寶 謹作 綠化比丘 玄玉 正會 大元 塋仁)”이라 새겨져 있어, 범종이 ‘만력 47년’인 1619년(광해군 11)에 화주 천보(天寶) 스님의 주도로 주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조선 후기 승려 주종장(鑄鍾匠) 가운데 유일하게 임진왜란 이전부터 활동하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어,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의 승장의 계보나 범종의 양식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다.

2012년 12월 27일 보물 제179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가평 현등사 동종은 조선 전기 궁중 양식 범종의 전통을 계승하여 제작된 범종이며, 조성 연대가 명확하고 주조 상태도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무늬들을 조화롭게 배열하였다. 조선 중기 범종의 조형성과 주조 기법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