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018
한자 天主敎
영어공식명칭 catholic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현대
집필자 김영아

[정의]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성부, 성자(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삼위일체를 신앙 대상으로 하는 기독교 종파.

[개설]

천주교는 로마 교황을 교회의 대표자로 인정하는 종교이며 ‘가톨릭’으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서학(西學)·서교(西敎)·천주학(天主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가평 지역의 천주교는 가평 천주교회, 미원 천주교회, 청평 천주교회, 현리 천주교회, 맹호 성당 등이 있다. 한국의 천주교는 선교 초기 전통사회와 갈등을 빚으며 탄압을 받았다. 따라서 천주교 신자들은 조선 정부의 천주교 탄압을 피해 깊은 산으로 피신하여 나름의 신앙 공동체인 교우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가평의 천주교 역사에도 이러한 부분이 드러난다. 가평 군내에는 화악산을 비롯한 명지산, 운악산 등의 크고 작은 산들이 많아, 초기 천주교인들에게 적합한 피신처 역할을 하였다. 가평 지역에는 개항 직후인 1885년(고종 22)부터 전패 공소가 있었으며, 그 외에도 사그막, 백둔리, 상색, 조종안 등에도 공소가 있었다. 이들 초기 천주교 공동체들은 현재 대부분이 폐허가 되어 흔적을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공소는 폐지되었으며, 인근 공소나 본당에 합류되었다. 가평 지역의 천주교는 서울교구에 소속되었으나, 이후 춘천교구에 속하게 되었으며,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들에 의해 본당 사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가평 지역의 본당]

청평 본당은 1953년 10월 7일 가평 군내에 설립된 최초의 본당이다. 청평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하면서 최초의 천주교회가 설립되었다. 청평 본당한국전쟁 이후 청평 지역에 세워진 친애원과 관련이 있다. 청평 본당의 제2대 주임을 겸임한 윤을수 신부는 사회복지기관의 설립과 운영에 평생을 바친 인물이며 친애원 원장도 겸임하였다.

가평 본당은 1957년 9월 1일에 청평 본당 담당의 가평 공소가 ‘가평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가평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조인원 신부가 부임하였다.

현리 본당은 1983년 9월 1일 청평 본당에서 분가되어 준 본당으로 승격된 후 1988년 8월 17일 교구에서 사제를 파견하면서 주임신부가 상주하였다.

[가평 지역의 공소]

공소는 본당보다 작은 천주교회의 단위를 말한다. 신부가 상주하지 않아서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고 정기적으로 신부의 방문을 통해 성사가 집행된다.

전패 공소가 있었던 전패 마을의 위치는 현재의 가평읍 승안리(升安里)용추계곡북면 백둔리(栢屯里), 하면 마일리(馬日里)[현 조종면 마일리] 사이에 분포한 산간 지역일 것으로 추정된다. 1893년(고종 30) 당시 가평에는 전패 공소가 유일한 천주교 공동체였다. 신성우 신부의 부모와 가족들은 전패 공소에 소속된 신자였을 것으로 파악된다. 신성우 신부 집안은 조부 때부터 천주교를 믿어왔고, 부친과 둘째 형 신비우가 대를 이어 공소 회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따라서 전패 마을에는 100여 년 전에 이미 자식을 신학교에 보낼 만큼 독실한 천주교 신자들이 살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포회촌 공소가 있었던 ‘포회촌’이라는 지명은 개울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가평읍 상색리의 상색천이 마을 앞에 모여서 흘러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개모둠이’·‘개무덤’으로도 불린다. 지금의 빛고개 아랫마을로 가평 본당 상색 공소의 옛 이름이다.

사그막 공소가 있는 사그막은 가평읍 대곡리에서 경반리 말굽이 촌락으로 넘어가는 골짜기에 있는 곳이다.

조종안 공소상면하면에 걸친 조종천 변의 지역에 있었으며, 현리 본당의 모체이다.

백둔리 공소는 1909년부터 1917년까지 8년 동안 북면 백둔리에 있었던 공소로, ‘잣둔리 공소’라고도 불린다. 백둔리 공소는 원주원씨 후손인 주한, 주천 형제가 하면 신상리[현 조종면 신상리]에서 천주교를 믿으며 살다가 백둔리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원씨 일가 외에도 박씨와 김씨 일가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지만, 그들이 만주와 회령 등지로 이주해 나가고 난 뒤 공소는 폐쇄되었다. 후손들이 지금도 살고 있으며, 옹기점을 경영하고 있다.

전패 공소사그막 공소는 자연 폐쇄되었고, 포회촌 공소는 춘천 죽림동 본당에서, 조종안 서파 공소는 의정부 본당에서 담당하고 있다. 양평 본당에 속한 공소는 설곡리뿐이다. 당시 청평 지역에는 신자가 없어 어느 본당에도 속하지 않았다. 다만 교회의 담당 구역상 양평 본당이 청평 지역도 담당하였다. 해방을 맞아 청평 장로교회 장광열 장로가 현재의 청평 본당 터에서 옹기 공장을 시작하였고, 공장에 일하러 온 사람들도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이들 공장 책임자이자 청평 공소의 초대 공소 회장이었던 김동수 집에서 공소 예절을 드렸고 이것이 청평 공소의 시작이다. 이들이 청평에 교우촌을 형성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일랜드 선교사 퀸란 신부가 1946년 청평을 방문하여 판공성사를 주기도 하였다.

[본당의 주임신부와 선교사]

윤을수(尹乙洙)[라우렌시오, 1907~1971] 신부는 1932년 사제 서품을 받고, 장호원 본당 보좌, 소신학교 교사로 재직한 후 유학하여, 1939년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에서 「조선의 유교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마와 미국에서 활동한 후 귀국하여, 1953년 청평 친애원 원장으로 부임한 후 1954년 청평 본당 주임까지 겸임하였다. 친애원윤을수 신부가 인수한 고아원으로, 샬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이 고아들을 돌보았던 곳이다. 윤을수 신부는 사회 사업 외에도 평택과 아산 그리고 청평 본당의 담당 구역인 한강 유역의 대성리와 입석리, 지둔리 등지에서도 개간 사업을 시도하였다. 윤을수 신부의 각종 사회사업은 가평의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었으며, 가평의 천주교 교세가 증가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조인원(趙仁元)[빈첸시오, 1907~1978] 신부는 가평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1958년 천주교 교육기관인 정지신학원을 본당 내에 전교회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정지신학원은 가톨릭교리 신학원의 전신이다.

신성우(申聖雨)[1893~1978] 신부는 제9대 죽림동 본당 주임신부로, 가평에서 출생하였다.

르메르(LeMerre)[1858~1928] 선교사가 활동할 당시 가평 지역을 비롯한 경기도 동부와 강원도 지역에서 천주교인들의 사목에 힘쓴 성직자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 선교사들이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아시아 지역에 종신 선교사를 파견한 선교 단체로, 탄압받던 천주교 신자들의 편지를 접한 교황이 파리외방전교회에 선교사의 파견을 요청하여 이루어졌다. 1836년(헌종 2)부터 파리외방전교회가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에 조선 정부는 1839년 기해교난, 1846년 병오교난, 1866년 병인교난과 같은 탄압을 통해 만여 명의 조선인 신자와 프랑스 선교사 12명을 희생시켰다. 프와넬 신부와 그의 뒤를 이어 풍수원 본당 주임을 맡은 사람이 르메르 신부였다. 르메르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 선교사로, 한국명은 이유사(李類斯)이다. 르메르 신부는 1887년 입국하여 조선의 언어와 풍습을 익혔으며, 1896년 신설된 원주 본당의 주임신부로 이임되어 가평과 양평 지역에서 사목하였다.

프와넬(Poisnel)[1855~1925] 선교사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 선교사로, 1881년 조선에 입국하였다. 한국명은 박도행(朴道行)으로, 1888년 풍수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르메르 신부를 파견하여 강원도 지역에 최초의 본당을 세운 인물이다. 풍수원 본당은 강원도 지역과 양평, 가평 등의 경기도 동부 지역에 걸친 12개 군에 29개의 공소와 약 2천여 명의 신자들을 담당하였다. 이때부터 가평 지역에 있던 전패 공소르메르 신부의 사목을 받게 되었다.

퀸란(Quinlan)[1896~1970] 선교사는 아일랜드 선교사로, 한국명은 구인란(具仁蘭)이다. 해방 후 처음으로 청평 공소에 와서 성사를 집전한 신부이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선교사로 파견되었다가, 1933년부터 성골롬반외방전교회가 조선의 전라도 지역 사목을 맡게 되자 이듬해 조선에 입국하여 6년 동안 전라도 일대에서 사목하였다. 1939년 춘천 본당으로 전임된 후 춘천 교구장으로 한국에 돌아와 1955년 주교로 성성되었다. 은퇴 후 강원도 삼척에 있던 성 요셉병원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목하다가 1970년 선종하였다.

[천주교 관련 단체]

작은 예수회 현리 공동체는 장애인 공동체 사목활동을 하는 사회복지기관이다. 한국 최초로 장애인을 천주교 수도자로 받아들여 장애인뿐 아니라 행려자·노인 등 소외된 집단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1984년 박성구[예수 마리아 요셉] 신부가 의지할 곳 없는 장애인 부부를 만나면서 가평군 하면 마일리 94번지에 본원 건물을 건립하고 수련자를 받기 시작하였다. 1993년 사회복지법인 작은 예수회를 설립하고 박성구 신부가 대표 이사로 취임하였다.

가평 꽃동네 마을은 충북 음성군에 본부를 둔 천주교 사회복지단체 ‘꽃동네’의 분원이다. 가평 꽃동네는 부랑인과 노인 및 심신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병원을 마련하고, 다양한 사회복지활동을 펴고 있다. 1996년 준공된 노체 리안드리 자애병원은 종합병원의 진료 수준을 확보하고, 꽃동네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가평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평 지역의 천주교 현황]

가평읍 읍내리가평성당이 있으며 주임신부는 이유수, 신도 수는 550명이다. 설악면에 미원성당이 있으며 주임신부는 강용석, 신도 수는 403명이다. 청평면청평성당이 있으며 주임신부는 서성민, 신도 수는 1,080명이다. 조종면현리성당과 맹호성당이 있다. 현리성당의 주임신부는 이종찬이며, 신도 수는 1,500명이다. 맹호성당의 주임신부는 이종민이며 신도 수는 500명이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 『가평군지』(가평군사편찬위원회, 2006)
  • 『2018년 한국의 종교 현황』(문화체육관광부, 2018)
  • 「가평 종교 단체 현황」(가평 군청(https://www.gp.go.kr))
  • 천주교 춘천 교구(http://www.cccatholic.or.kr)
  • 가평 꽃동네(http://www.kkotgp.or.kr)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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