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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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권성남(權盛男)은 가평군 군내면 마장리[현 가평읍 마장리] 출신이다. 구체적인 가계와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권성남(權盛男)은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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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연상(金演祥)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출신이다. 생몰년과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연상은 가평군에서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1919년 전국에서 3·1운동이 전개되자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1919년 3월 15일 가평 북면 일대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곧 가평읍으로 확산되었고, 수백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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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창현(金昌鉉)[1884~1934]은 1884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김창현의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거주하던 이규봉(李圭鳳)이 고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상경하였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규봉은 정한교(鄭漢敎), 신태연(申泰鍊), 민영순(閔泳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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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필규(金弼圭)[1874~1919]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명심(明審), 이명(異名)은 김문규(金文圭)이다. 1874년 경기도 가평군 군내면 달전리[현 가평읍 달전리]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평산신씨 신도균(申道均)의 딸이다. 김필규는 10세 이전부터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을 완독했을 정도로 총명했다고 전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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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교성(李敎星)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이교성(李敎成)’이라고도 불리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가평군은 1919년 3월 15일 북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교성은 이날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시위대를 이끌고 가평 읍내까지 진출하였다. 이튿날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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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도봉(李道奉)은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북면 만세시위 참여 당시 24세로 작성되어 있어 1896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도봉은 1919년 당시 잡화상을 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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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만석(李萬錫)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준석(準錫)이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沐洞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2년생으로 추정된다. 가평 지역의 만세시위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이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그 내용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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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이영헌(李英憲)[1873~1965]의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649이다.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영헌 성품은 온화한 편이었다고 전한다.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자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의 준비가 진행되었다. 가평 지역에 3·1운동의 소식을 전파한 것은 1917년부터 목동리의 이장을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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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치영(李致榮)은 가평군 북면 화악리 출신으로 천도교인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치영은 3월 15일 북면사무소 앞에서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가평 읍내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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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홍복(李弘福)[1881~1945]은 가평군 북면 이곡리 275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이윤석(李胤錫)·정흥교(鄭興敎)·정기복(鄭基福) 등과 함께 의논하여 주민들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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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귀남(張貴男)은 가평군 군내면 대곡리[현 가평읍 대곡리] 출신으로 ‘장기남(張基男)’으로도 불리었다. 장귀남의 생몰년월일 및 자세한 가계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판결문에 따르면 189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직업은 콩 장수이며, 종교는 기독교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된 후 전국의 지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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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응옥(張應玉)은 1863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장응옥은 3월 15일 북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시위대 선두에서 목동리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가평 읍내로 행진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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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재명(鄭在明)[1875~1950]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덕서(德書)이다. 아버지는 정응호(鄭應豪), 부인은 인동(仁同) 장씨이다. 정재명은 1875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에서 태어났다. 정재명은 가평군에 만세시위 소식을 전달한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 정재명은 1919년 3월 14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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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효섭(丁孝燮)은 가평군 북면 화악리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이윤석(李胤錫)·정흥교(鄭興敎)·정기복(鄭基福) 등과 함께 의논하여 주민들의 만세시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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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기영(崔基榮)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아버지는 최학순(崔學淳)이며, 1897년 7월 10일 가평군 북면 이곡리 335에서 태어났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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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전개된 북면 만세시위 참여자. 최기홍(崔基弘)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할아버지는 최구현(崔九鉉), 아버지는 최덕순(崔悳淳)이며,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서 태어났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최기홍(崔基弘)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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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용화(崔容和)[1901~1970]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독립운동가 최종화(崔宗和)의 동생이다.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287이다. 최용화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형인 최종화가 가릉보성학교(嘉陵普成學校)를 졸업하고 농림전문학교에 진학하는 등 학업에 정진하였으므로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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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인화(崔仁和)[1900~1937]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이명(異名)은 최인혁(崔仁爀)이다. 아버지는 최기선(崔基善)이며,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이다. 이규봉(李圭鳳)의 둘째 딸 이윤애(李閏愛)와 혼인하였으며, 자식은 최승렬(崔承烈), 최승락(崔承洛)이 있다. 최인화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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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종화(崔宗和)[1896~1919]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아버지는 궁내부 주사와 승훈랑(承訓郎)을 지낸 최기완(崔基完)이다.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287이다. 15세 때 류은상(柳殷相)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자식으로 최승덕(崔承德)이 있다. 최종화는 8살 때부터 한학을 배웠고, 이병찬(李炳贊)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