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681
한자 金演祥
영어공식명칭 Gim Yeonsa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범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5일 - 김연상 북면 만세시위 참여
출생지 김연상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연상 거주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지도보기
활동지 김연상 북면 만세시위 참여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북면 만세시위 참여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김연상(金演祥)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출신이다. 생몰년과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활동 사항]

김연상은 가평군에서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1919년 전국에서 3·1운동이 전개되자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1919년 3월 15일 가평 북면 일대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곧 가평읍으로 확산되었고, 수백명의 가평 주민들이 참여하였다. 이를 주도한 것은 이규봉(李圭鳳)으로 그는 고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상경하였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 서울에 있던 이규봉의 제자 정한교(鄭漢敎), 신태연(申泰鍊), 민영순(閔泳純)을 만나 경위를 듣게 되었다. 이규봉은 이들에게 받은 「독립선언서」 1매와 돌아오는 길에 받은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 각 1매씩을 가지고 가평으로 돌아왔다. 3월 6일 장남인 이윤석과 제자 정흥교(鄭興敎) 만나 서울에서 보고 들은 상황을 이야기하고, 가평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뜻을 정한 뒤 이튿날인 3월 7일 아회(雅會)를 열어 주민들을 불러모았다. 이들은 태극기를 제작하고, 북면의 각 동리에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통문을 보내거나 직접 찾아갔다. 거사일은 3월 15일로 정하였다. 김연상은 이때 읍내 주민들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몰래 배달해주었다.

거사 당일 장기영(張基英), 정성교(鄭聖敎), 이만석(李萬錫), 정재명(鄭在明), 이병찬(李炳贊) 등 19명의 주도인물과 주민 수백명이 함께 만세를 부르고, 가평읍내로 이동하여 만세를 불렀다. 가평군청, 면사무소, 학교, 우편국 등 각지에서 만세를 불렀으며, 김정호(金定鎬), 최기홍(崔基弘), 장귀남(張貴男), 김창현(金昌鉉) 등 가평 읍내 주민들도 이에 참가하여 참여 인원은 더욱 늘어났다. 일본 경찰이 이윤석 등 주도인물들을 찾아내 체포하였다. 이에 나머지 주도인물들이 북면 주민 200여명과 함께 체포된 이윤석 등을 방면하기 위해 목동리에서 헌병분견소로 가던 중 헌병과 만나 격렬히 저항하였으나 결국 수십명이 체포되고 20여명이 경성지방법원으로 송치되었다. 김연상은 이때 일본 경찰의 검거를 피해 타지로 이주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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