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764
한자 鄭在明
영어공식명칭 Jeong Jaemyeong
이칭/별칭 덕서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다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5년 10월 30일연표보기 - 정재명 출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일 - 3·1운동 전개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5일 - 정재명 북면 만세시위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50년 1월 15일연표보기 - 정재명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정재명 건국훈장 애족장 서훈
거주|이주지 정재명 거주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 지도보기
활동지 정재명 북면 만세시위 참여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지도보기
묘소 정재명 묘소 -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지촌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북면 만세시위 참여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계]

정재명(鄭在明)[1875~1950]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덕서(德書)이다. 아버지는 정응호(鄭應豪), 부인은 인동(仁同) 장씨이다. 정재명은 1875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정재명은 가평군에 만세시위 소식을 전달한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

정재명은 1919년 3월 14일 가평군 북면 목동리의 대서인 이규봉(李圭鳳)의 집에 갔다가 이규봉의 아들 이윤석(李胤錫)으로부터 손병희 등이 작성한 「조선독립선언서」를 보게 되었다. 이윤석은 3월 15일 오전 9시 경 가평군 북면의 성황당에서 사람들을 모아 북면사무소로 가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자고 하였고, 정재명은 이에 동의하였다. 정재명은 정석주(鄭錫周)와 상의 후 주민들에게 전달하였다. 3월 15일 북면사무소 앞에서 군중들을 모아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정재명은 이로 인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가평경찰서에서 취조를 받고 경성지방법원으로 이송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묘소]

정재명의 묘소는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지촌리(芝村里) 저계간좌(狙溪艮坐)에 위치해 있다.

[상훈과 추모]

정재명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정재명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19. 4. 26)
  • 「정재명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19. 7. 14)
  • 「정재명 판결문」(고등법원, 1919. 9. 25)
  • 『가평군지』(가평군사편찬위원회, 2006)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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