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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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휴전이 되기까지 가평군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지속된 남한과 북한의 전쟁. 6·25전쟁 당시 가평 지역은 북방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경로 중 하나로서 전략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방어지역이었다. 일찍이 가평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각 세력이 각축하던 곳이었고, 이러한 전략적 특성은 6·25전쟁 당시 서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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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에서 말로 전승되어 내려오는 설화와 민요 등의 민간 지식의 총체. 구비전승은 문자가 아닌 말로 전승되어 내려온 설화, 민요, 민속극, 속담, 수수께끼 등이 포함되며 설화는 신화, 전설, 민담 등으로 분류된다. 신화, 속담, 수수께끼, 민담 등은 가평 지역을 배경으로 한 것이 조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전설과 민요를 중심으로 서술하도록 한다. 가평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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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 독립운동가. 권임상(權任相)[1887~1942]의 본관은 안동이며, 1887년 가평군 북면 백둔리 646에서 태어났다. 슬하에 아들 권병훈(權炳薰)을 두었다. 1919년 전개된 3·1운동은 각지로 확산되었다. 가평에서도 3월 15~16일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 사는 이규봉(李圭鳳)은 한문교사 출신으로, 고종의 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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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규하(金奎夏)[1890~1972]의 본관은 언양(彦陽)이며, 아버지는 김동환(金東煥)으로 1890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태어났다. 백부 김주환(金周煥)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신성녀(申性女)로, 슬하에 5형제를 두었다. 김규하는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공부였다. 1919년 3월 1일 이규봉은 서울에 상경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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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연상(金演祥)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출신이다. 생몰년과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연상은 가평군에서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1919년 전국에서 3·1운동이 전개되자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1919년 3월 15일 가평 북면 일대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곧 가평읍으로 확산되었고, 수백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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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창현(金昌鉉)[1884~1934]은 1884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김창현의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거주하던 이규봉(李圭鳳)이 고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상경하였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규봉은 정한교(鄭漢敎), 신태연(申泰鍊), 민영순(閔泳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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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목동리(沐洞里)는 가평군 북면 8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목동1리, 목동2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선황당, 죽둔리, 싸리재, 범바위 등이 있다. 목동리는 사람이나 짐승의 목 중 앞부분을 의미하는 길목에 위치한 동네라는 ‘멱골’ 또는 ‘목동’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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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에 속하는 법정면. 북면(北面)은 가평군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8개 법정리[목동리, 소법리, 화악리, 도대리, 적목리, 백둔리, 제령리, 이곡리]와 13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춘천시 서면과 화천군 사북면, 서쪽으로는 조종면과 포천시 일동면, 남쪽으로는 가평읍, 북쪽으로는 포천시 이동면 및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과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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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5일과 16일에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가평 출신의 신숙(申肅), 정한교(鄭漢敎) 등은 천도교 측의 독립 선언 준비 간사로 활동한 인물로 독립선언서를 교정하고 각 지방에 배포하는데 힘썼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으로 구장을 하던 이규봉(李圭鳳)은 이들로부터 3·1운동의 발생과 전개 양상을 전해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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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 있는 북면의 행정 사무를 비롯한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행정 기관. 북면행정복지센터는 가평군 북면의 행정 사무를 담당하는 기관이자 주민 자치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주민들에게 문화 복지 공간을 제공하고자 설립된 공공 기관이다. 면사무소의 주요 기능이 행정 담당에서 주민 문화 복지 제공 기능으로 전환됨에 따라 면사무소에 존재하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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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만석(李萬錫)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준석(準錫)이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沐洞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2년생으로 추정된다. 가평 지역의 만세시위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이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그 내용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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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이영헌(李英憲)[1873~1965]의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649이다.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영헌 성품은 온화한 편이었다고 전한다.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자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의 준비가 진행되었다. 가평 지역에 3·1운동의 소식을 전파한 것은 1917년부터 목동리의 이장을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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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윤석(李胤錫)[1894~1953]의 아버지는 가평군 북면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이규봉(李圭鳳)이다. 1894년 2월 1일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슬하에 5형제를 두었다. 이윤석은 어릴 때 사서삼경 위주의 한학 교육을 받다가 아버지가 한문교사로 있던 가릉보성학교(嘉陵普成學校)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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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기영(張基英)[1887~1950]의 아버지는 장두환(張斗煥)이며, 1887년 5월 1일 가평군 북면 화악리 1012에서 태어났다. 양반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장기영은 유년 시절 의리가 있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천도교에 입교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최초의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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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순천(張順天)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이다. 정확한 생몰년도와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장순천은 가평지역 교육가인 이규봉(李圭鳳)의 밑에서 글을 배웠다고 전한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가평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3·1운동 당시 고종의 인산일로 서울에 가있던 이규봉은 서울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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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순현(張順賢)[1868~1928]은 1868년 가평군 북면 목동리 583에서 태어났다.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 사는 이규봉(李圭鳳)은 고종 인산일에 맞추어 상경했다가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였다. 이규봉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던 제자 정한교(鄭漢敎), 신태연(申泰鍊), 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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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응옥(張應玉)은 1863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장응옥은 3월 15일 북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시위대 선두에서 목동리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가평 읍내로 행진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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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기복(鄭基福)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큰멱골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정기복은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사숙하였다. 이규봉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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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석조(鄭錫祚)의 본관은 경주이다. 아버지는 정태규(鄭泰圭)로, 1881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은 각지로 전파되었으며, 가평에서도 3월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군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고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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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헌교(鄭憲敎)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아버지는 정광은(鄭光殷), 형은 함께 북면 만세시위에 참여한 정순교(鄭順敎)이다. 가평군 북면 출신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생몰년도는 확인할 수 없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가평에서도 3월 15일과 16일 만세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를 주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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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흥교(鄭興敎)[1900~1965]의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579이다. 이명은 정흥룡(鄭興龍)이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3월 14일 정흥교는 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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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가 존속한 1392년부터 1863년까지 경기도 가평 지역의 역사. 가평은 조선 건국 직후에는 고려 시대에 이어 강원도 춘천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이때는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고 토착 향리가 지역을 통솔하였다. 1396년(태조 5)에 이르러 가평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고, 조종현(朝宗縣)을 속현으로 거느리게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강원도로부터 분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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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을 경유하여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장리까지 연결되는 지방도. 지방도 제391호는 총 연장이 90.9㎞이며, 가평군에서는 청평면·가평읍·북면을 경유하는 62.022㎞ 구간이 포함된다. 지방도는 경기도에서 간선도로 역할을 수행하는 도로로서, 노선번호는 300호대를 사용한다. 지방도 제391호는 기점인 양평군 양서면과 종점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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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기영(崔基榮)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아버지는 최학순(崔學淳)이며, 1897년 7월 10일 가평군 북면 이곡리 335에서 태어났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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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용화(崔容和)[1901~1970]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독립운동가 최종화(崔宗和)의 동생이다.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287이다. 최용화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형인 최종화가 가릉보성학교(嘉陵普成學校)를 졸업하고 농림전문학교에 진학하는 등 학업에 정진하였으므로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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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인화(崔仁和)[1900~1937]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이명(異名)은 최인혁(崔仁爀)이다. 아버지는 최기선(崔基善)이며,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이다. 이규봉(李圭鳳)의 둘째 딸 이윤애(李閏愛)와 혼인하였으며, 자식은 최승렬(崔承烈), 최승락(崔承洛)이 있다. 최인화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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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종화(崔宗和)[1896~1919]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아버지는 궁내부 주사와 승훈랑(承訓郎)을 지낸 최기완(崔基完)이다.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287이다. 15세 때 류은상(柳殷相)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자식으로 최승덕(崔承德)이 있다. 최종화는 8살 때부터 한학을 배웠고, 이병찬(李炳贊)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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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세구(洪世拘)는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으로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