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실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704
한자 申麻實羅
영어공식명칭 Sin Masilra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성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2월 18일연표보기 - 신마실라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4년 - 신마실라 이화학당 대학과 1회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22년 - 신마실라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졸업
몰년 시기/일시 1965년 4월 1일연표보기 - 신마실라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5년연표보기 - 신마실라 대통령표창 서훈
출생지 신마실라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654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이화학당 - 경성 황화방(皇華坊)[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학교|수학지 펜실베니아주립대학 - 미국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여성
대표 경력 파리만국평화회의 한국 여성 대표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신마실라(申麻實羅)[1892~1965]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아버지는 신현철(申賢哲), 어머니는 윤매리이며, 여동생은 이화학당 교사로 3·1운동에 참여하였던 신형숙이다. 1894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654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신마실라는 김애숙, 이화숙과 함께 1914년 이화학당 대학과 제1회 졸업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대학 졸업생이다. 졸업 이후 이화학당 고등과 교사로 봉직하다가 미(美) 감리회 여성해외선교회 한국선교부에서 선교사를 돕던 중 3·1운동을 맞이하여 황애덕, 신형숙 등과 함께 3·1운동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후에는 김란사[하란사]의 뒤를 이어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될 여성 대표로 선정되었다. 자금 부족으로 파리로 갈 수 없게 되자 자금 확보를 위해 191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이승만, 서재필 등 독립운동 지도자와 교류하는 동시에 필라델피아주립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여 졸업하였다. 또한 3·1운동의 참상을 해외에 알리고 피해자 구호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였다. 특히 이승만의 지시를 받아 1919년부터 1921년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한인구제회 서기로 활동하는 한편 한국 독립을 촉구하는 순회강연을 하였다.

1919년 5월 경, 워싱턴에서 감리교 선교백년대회에 참석하여 3·1운동 당시의 참상을 연설하고, 같은 해 6월 대한자유공동대회에 참석하였으며, 8월에는 3·1운동 희생자 유가족을 위해 구제금을 모집했다. 1919년 10월 한인구제회(韓人救濟會) 서기, 1920년 4월 학생연합회 발기인으로 한국친우회(韓國親友會)를 돕기 위해 모금 활동을 벌였다. 1921년 5월 펜실베니아주 감리교 외국선교사회 통상회의에서 한국의 참상을 연설하였다. 1923년 뉴욕지방회에서 개최된 3·1절 기념식에서 서재필과 함께 연설하였고, 1931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는 친목회 조직을 제의하였다.

신마실라는 특히 모금 활동만으로는 한인 구제가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스스로 회사를 세워 운영하기도 하였다. 1942년 자동차 손괴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상대방 변호사가 “일본인에게는 법정이 닫혀 있다.”고 하자 “내가 일본인이라고?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대응한 사실이 필라델피아 지역신문인 『The Philadelphia Inquirer』에 실리기도 할 정도로 민족 의식이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상훈과 추모]

신마실라는 2015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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