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712
한자 申瀅淑
영어공식명칭 Sin Hyeongsuk
이칭/별칭 신준려,줄리아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성주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연표보기 - 신형숙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7년 - 신형숙 이화학당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5일 - 신형숙 서울에서 만세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신형숙 미국 웨슬런 대학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신형숙 보스턴대학 대학원 입학
몰년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신형숙 사망
출생지 신형숙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여성
대표 경력 3·1운동 참여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신형숙(申瀅淑)[1898~1980]의 본관은 평산(平山), 다른 이름은 신준려(申俊勵), 세례명이 줄리아이다. 아버지는 신현철(申賢哲), 어머니는 윤매리이며, 언니는 신마실라이다. 1898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유형기(柳瀯基)와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신형숙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들과 상경하여 언니 마실라와 함께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1917년 이화학당 제4회로 졸업하고 이화학당에서 강사로 있었다.

1919년 3·1운동 때 서울에 있는 학교가 모두 총궐기함에 따라 이화학당의 교사들과 학생들도 연일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신형숙은 3월 5일 미국인 교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생들과 시내로 들어가는 중에 박인덕과 함께 주모자로 몰려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이 일로 서대문 감옥에서 7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중국으로 탈출해 남경 금릉대학에서 1년간 공부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이승만을 도왔다. 당시 필라델피아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던 언니 신마실라의 도움으로 아이오와주에 있는 더뷰크(Dubuque)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유형기 감독과 약혼하였다. 1924년에는 웨슬런 대학으로 전학하여, 이듬해 졸업하였다. 1926년에는 다시 보스턴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사회윤리학을 전공하고 「공자와 아리스토틀의 윤리 비교연구」라는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27년 유형기 감독과 혼인한 후 귀국하였다. 이후 감리교 여자신학교 교사로 일하며 대한기독교 여자절제회 초대회장이 되었다. 해방 후 미국 군인 사병들을 도우며 일하다 1951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생활하다가 병을 얻어 치료 중 일생을 마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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