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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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비랑이 마을,비룡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
집필자 | 이영수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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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06년 - 비랭이 마을 경기도 인천부 비룡리와 경기도 인천부 독정리로 분리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비랭이 마을 경기도 부천군 다주면 용정리로 변경 |
변천 시기/일시 | 1946년 1월 1일 - 비랭이 마을 경기도 인천부 일지출정에서 경기도 인천부 용현동으로 개칭 |
소재지 | 비랭이 마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개설]
오늘날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지역은 구한말까지만 해도 비랑이 마을 또는 비랭이 마을이라고 불렸다.
[명칭 유래]
비랭이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째는 비룡리(飛龍里)가 잘못 전해져서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지금의 용현동의 상당 부분이 인천항 개항 뒤에 바다를 매립해서 생긴 땅으로 옛날 이 앞바다에서 “장마 때 용(龍)이 하늘로 날아[飛] 올라갔다.”라는 전설이 있어 비룡 마을로 불렸다는 설이 그것이다. 셋째는 조선 전기의 문신 심언광(沈彦光)이 남긴 시구 중에 “[인천의] 비룡강(飛龍江)에서도 바다가 잘 보인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비룡강을 용현동 비랭이 고개로 보는 견해도 있다. 넷째는 용현동 일대가 바닷가라는 점을 따져 비랑이를 ‘파도[浪]가 나르는[飛] 곳’이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다섯째는 비랑을 비탈 또는 벼랑을 뜻하는 우리 옛말 ‘비사’ 또는 ‘빗’에서 생긴 말로 보는 견해이다. 즉, 비랭이를 ‘비탈진 곳’, 비랭이 고개는 ‘비탈진 고개’가 되며, 이곳이 바닷가에 있는 고개여서 이런 이름이 생긴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형성 및 변천]
비랭이는 1906년 경기도 인천부가 동네 이름을 바꿀 때 경기도 인천부 비룡리와 경기도 인천부 독정리로 나누어졌다. 1914년 3월 1일 경기도 부천군이 신설되어 1914년 4월 1일 경기도 부천군 다소면과 경기도 부천군 주안면이 통합된 후 경기도 부천군 다주면 소속이 되었고, 1914년 11월 20일에 경기도 부천군이 관할 동리 명칭을 개정할 때 비룡리(飛龍里)의 ‘용’ 자와 독정리(讀亭里)의 ‘정’ 자를 따서 만든 경기도 부천군 다주면 용정리가 1936년 10월 1일 경기도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경기도 인천부 일지출정(日之出町)으로 불렸다. 1946년 1월 1일 경기도 인천부 용현동으로 개칭되었다. 경기도 인천시 남구 용현동은 1957년 1월 1일 경기도 인천시 남구 용현 1동과 경기도 인천시 남구 용현 2동으로 분리되었다.
[현황]
비랭이 마을은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으로 경인 고속 도로를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수봉 근린공원에 인접한 지역으로 전형적인 주거 지역이다. 인하 대학교가 있는 대학가 주변으로 문화 시설이 구축된 신흥 문화의 마을이며, 재개발 지역이 공존한다. 2018년 8월 31일 현재 용현동에는 3만 8450가구, 8만 9664명[남자 4만 5674명, 여자 4만 399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