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현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716
한자 朝宗縣
영어공식명칭 Jojong-hyeon
이칭/별칭 심천현,복사매,준수현,준천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상면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류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940년연표보기 - 준수현(준천현)에서 조종현으로 개칭
폐지 시기/일시 1396년 - 조종현 가평현에 예속
관할 지역 조종현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지도보기|상면지도보기

[정의]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경기도 가평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개설]

조종현(朝宗縣)은 신라 때 준수현(浚水縣) 또는 준천현(浚川縣)으로, 고려 때 조종현으로 고쳤고, 조선 초기 가평현의 속현이 되었다. 조종현은 지금의 가평군 조종면상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본래 고구려 심천현(深川縣)인데, 신라 때 준수현으로 고쳐 가평군(嘉平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조종현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가평(嘉平)과 함께 모두 춘천(春川)에 붙였으며, 1396년(조선 태조 5) 가평감무(加平監務)를 두고, 조종현가평현에 붙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도 거의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백제 때 복사매(伏斯買), 또는 심천이며, 757년(경덕왕 16) 준수로 고쳤는데, 준천이라고도 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조종으로 고쳤고, 1396년 가평현에 내속되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변천]

조종현은 1396년 가평현의 속현이 되면서 조선시대에는 조종면(朝宗面)으로 개편되었다. 『여지도서』「가평군지지(加平郡地誌)」 방리조 조종면에는 율길리(栗吉里), 연동리(連洞里), 항사리(項沙里), 임초리(林草里), 현리(縣里), 판미리(板尾里), 신복리(新卜里), 대부산리(大釜山里) 등 8개 리가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리별 호수와 남녀 인구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기묘년(己卯年) 장적에 따랐기 때문에 1759년(영조 35)의 호구가 반영되어 있다. 당시 조종면은 민호 638호, 남 1,028명, 여 86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호구총수(戶口總數)』 가평군 조종상면(朝宗上面)에는 임초리·항사리·연동리·율길리에 242호 842명[남 489명, 여 353명], 조종하면(朝宗下面)에는 현리·판미리·신복리·대부산리에 320호 1,205명[남 711명, 여 494명]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789년(정조 13)의 호구에 해당된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 『광여도(廣輿圖)』, 『여지도(輿地圖)』,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 『청구도(靑邱道)』 등의 가평군 고지도에는 ‘조종면’이 표시되어 있다.

1842년(헌종 8)에 간행된 『가평군읍지(加平郡邑誌)』『경기지(京畿誌)』「가평읍지」에는 조종상면과 조종하면으로 분리되어 있고,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경기읍지(京畿邑誌)』「가평읍지」 방리조에는 조종상면 17동과 조종하면 19동이 수록되어 있다.

1895년(고종 32)에는 상면(上面)하면(下面)으로 개편되었는데, 1899년(광무 3)에 제작된 『가평군읍지』에는 상면 16동과 하면 17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종현은 조선 초기 가평현의 속현이 되면서 조종면으로 개편되었고, 이후 조종상면과 조종하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895년 상면하면으로 개편되는 과정을 통해 전통시대 지방행정구역 구획의 변화부터 개항기 근대적 지방행정제도의 개편까지 살펴볼 수 있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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