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14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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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喪禮扶助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상갓집에 문상을 가면서 물건이나 돈을 내는 행위.
[개설]
상례부조는 상을 당한 집에 가서 돈이나 물건을 드리는 행위이다. 장례를 치루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지출된다. 상갓집에는 음식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오는 문상객을 다 대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생의례 중 가장 큰 것이 상장례이다. 따라서 제사도 여러 차례 지내야 하므로 제수용 음식도 비용이 적지 않다. 게다가 장지에서 구덩이를 파는 사람, 상여를 메는 사람 등에게도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한다. 사람이 한 명 죽으면 3년 먹을 것을 가져간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 가난한 집에서는 자칫 장례를 치룬 후 빚을 질 수도 있다. 과거에는 돈이 귀하여 물건으로 부조를 하고 근래에는 돈으로 부조를 한다. 과거 돈이나 물건도 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일손을 돕기도 하고 이웃에서는 부조를 했지만 일손을 돕는 것도 당연시 했다.
[연원 및 변천]
상례에는 많은 물품과 음식이 필요하며 상여를 메거나 산역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다. 따라서 주민들은 오랜 옛날부터 물건이나 음식으로 부조를 하거나 일을 거들어주는 것으로 도왔다. 근래에는 물건이나 음식으로 부조를 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주로 돈으로 부조를 한다.
[사례]
북면 제령리의 사례를 보면, 1960년대 마을에서 제일 큰 부조는 떡 부조였다. 그 다음이 술 부조였다. 떡은 모재비로 가득 채우려면 쌀 세 말이 들어갔다. 떡을 친 다음 떡살로 눌러서 흰떡 넙죽한 것을 모쿠리에 담아 가져갔다. 술은 한 동이를 가져가는데 보리쌀 닷 되에 누룩 서너 되를 넣어야 한 동이가 나온다. 양조장 술도 있었지만 집에서 옥수수나 보리로 담는 술보다 비싸서 대개는 담가 썼다. 상례를 한 번 치르면 술이 30~40말이 필요했다. 친한 친구나 친척이 상을 당하면 팥죽을 쑤어 가는데 도깨비가 팥죽을 무서워하니까 육갑하지 말라고 그렇게 했다고 한다. 1960년대 당시에만 하더라도 상갓집에 갈 때는 부조 외에도 자기가 먹을 것을 가져갔는데 쌀 한 됫박이나 돈을 가져갔다. 이를 ‘군반미[궁밥미]’라 하였는데 이것을 모으면 열 말 정도는 되어서 장례 때 점심 한끼는 대접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물건보다는 주로 돈으로 부조를 했다. 당시 조의금은 대개 3만원 정도를 했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더 많은 비용을 냈다. 2019년에는 5만원 정도 부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