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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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敎星 |
영어공식명칭 | I Gyoseong |
이칭/별칭 | 이교성(李敎成)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성주현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일 - 3·1운동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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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이교성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출생지 | 이교성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
거주|이주지 | 이교성 거주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
활동지 | 이교성 북면 만세시위 참여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계]
이교성(李敎星)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이교성(李敎成)’이라고도 불리었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가평군은 1919년 3월 15일 북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교성은 이날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시위대를 이끌고 가평 읍내까지 진출하였다. 이튿날 3월 16일 일본 경찰에 검거된 동료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가평 헌병주재소 앞에서 시위하다 체포되었다. 가평경찰서에서 1차 신문을 마친 후 경성지방법원으로 송치되었다가 4월 26일 태형 50을 언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