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687
한자 金昌鉉
영어공식명칭 Gim Changhy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범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김창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5일 - 김창현 북면 만세시위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34년 2월 19일연표보기 - 김창현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김창현 대통령 표창 서훈
출생지 김창현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618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창현 거주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618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북면 만세시위 참여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창현(金昌鉉)[1884~1934]은 1884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김창현의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일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거주하던 이규봉(李圭鳳)이 고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상경하였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규봉정한교(鄭漢敎), 신태연(申泰鍊), 민영순(閔泳純)을 만나 경위를 듣고, 가평군에 만세시위를 전파하기 위해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들고 돌아왔다. 이규봉은 장남 이윤석(李胤錫), 정흥교(鄭興敎)와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으며, 이를 위해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여 뜻을 함께 할 주민들을 모았다. 그리하여 장기영(張基英), 정성교(鄭聖敎), 이만석(李萬錫), 정재명(鄭在明), 이병찬(李炳贊) 등 약 20여명의 주민들은 이규봉의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기로 하였으며, 태극기 1,800여매, 비밀통문 500여매가 제작되었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15일로 정하고, 전날 정기복(鄭基福), 정천수(鄭天洙), 최인화(崔仁和) 등이 북면 각 동리를 돌며 만세시위 참여를 촉구하였다.

3월 15일 북면사무소 앞에서 수백명의 군중이 만세를 불렀고 이들은 가평 읍내로 이동하여 가평군청과 면사무소, 천도교구실 및 보통학교 등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에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이규봉, 이윤석, 최기선(崔基善), 최인화, 최종화, 최용화 등 10여명을 체포하였다. 3월 16일에는 이들을 구하고기 위해 약 200여명의 주민들이 목동리의 성황당에 모여 헌병주재소를 향해 몰려갔다. 목동리 당고개에서 헌병들과 만난 주민들은 죽기를 각오하며 헌병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피체된 주도인물들을 구하러 나섰으나 결국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말았다. 김창현은 이들과 함께 피체되어 1919년 4월 26일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8개월 형을 언도받고 1920년 4월 28일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창현은 2006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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