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671 |
---|---|
한자 | 權盛男 |
영어공식명칭 | Gwon Seongnam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성주현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일 - 3·1운동 전개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권성남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출생지 | 권성남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마장리 |
활동지 | 권성남 북면 만세시위 참여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마장리 |북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권성남(權盛男)은 가평군 군내면 마장리[현 가평읍 마장리] 출신이다. 구체적인 가계와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활동 사항]
권성남(權盛男)은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은 동생 이규붕(李圭鵬)과 장남 이윤석(李胤錫), 정흥교(鄭興敎)·최종화(崔宗和) 등과 뜻을 모아 3월 15일 가평군 북면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권성남은 군내면 마장리의 책임자로 주민을 동원키로 하였다. 3월 15일 마장리 주막 유흥권(柳興權)의 집 앞에서 미리 받아두었던 태극기를 주민 2백여 명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어 북면 만세 시위대와 합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대를 이끌고 가평 읍내까지 진출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5월 15일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6개월 언도를 받았으며,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7월 26일에 기각되었다. 다시 고등법원에에 상고하였으나 10월 4일 기각됨에 따라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