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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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億基 |
영어공식명칭 | Cho Eokgi |
이칭/별칭 | 송재(松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상면 덕현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임현채 |
거주|이주지 | 조억기 은거지 - 경기도 가평군 상면 덕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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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조억기 묘 -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가곡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창녕 |
[정의]
고려 말·조선 초 경기도 가평 지역에 머물렀던 학자.
[가계]
조억기(曺億基)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호는 송재(松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양평(襄平) 조익청(曺益淸)이며, 아버지는 상호군(上護軍)을 지낸 소옹(巢翁) 조승달(曺承達)이다. 부인은 안동 김씨이다.
[활동 사항]
조억기는 이성계의 즉위를 반대하는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조현리(曺峴里)에 은거하였다. 이성계가 사람을 보내 관직을 내렸지만 거절하자 용문산에서 추방되었다. 조억기는 틈나는 대로 용문산(龍門山) 가야봉에 있는 큰 바위에 올라가 개경을 바라보며 충절을 다짐하였다고 한다. 바위 위에 ‘국망대(國望臺)’라는 글자를 새겨놓고 식음을 전폐하다 굶어 죽었다. 용문산에서 쫓겨나 한때 가평군 상면 덕현리의 일명 조가대(曺哥垈)에 머물렀다.
[묘소]
조억기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가곡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