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호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546
한자 加平 胡氏
영어공식명칭 Gapyeong Ho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주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44년 - 가평 호씨 시조 호극기 조선에 입국
본관 가평 - 경기도 가평군
성씨 시조 호극기

[정의]

호극기를 시조로 하는 경기도 가평군의 세거 성씨.

[연원]

가평 호씨와 파릉(巴陵) 호씨의 시조는 모두 명나라 관료인 치암(恥菴) 호극기(胡克己)이다. 호극기가 조선에 귀화한 이후 많은 후손을 남겼는데, 그 중 6세 호세익(胡世翼)의 첫째 아들 호숙(胡淑)의 후손은 중국의 본관인 파릉(巴陵)을, 둘째 아들 호징(胡澄)과 셋째 아들 호준(胡濬)의 후손은 가평을 본관으로 하여 분화하였다.

[입향 경위]

가평 호씨의 시조인 호극기(胡克己)는 명나라 관료 호사표(胡士表)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한 뒤 직각 한람학사로 도어사대부에 올랐다. 이후 1644년(인조 22) 당시 명 황제의 명을 받아 답례사절단(答禮使節團)의 일원으로 조선에 입국하였다. 그 해 명나라가 청나라에 멸망하자, 귀국하지 않은 채 조선에 귀화하였다. 이후 호극기는 가평 대명탄(大明灘)에 거주하다가 함경남도 북청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전한다.

호극기의 자식으로는 첫째 아들 호제백(胡濟伯), 둘째 아들 호두필(胡斗弼), 셋째 아들 호도문(胡都門), 넷째 아들 호원백(胡元伯) 등이 있다. 손자로는 호사룡(胡士龍), 호태기(胡泰起), 호시익(胡詩益), 호수빈(胡秀彬), 호세익(胡世翼) 등이 있고, 증손자로는 호의결(胡儀潔), 호숙(胡淑), 호징(胡澄), 호준(胡濬) 등이 있다. 파릉 호씨에서 직계 분적된 성씨 본관은 토산 호씨를 비롯하여 많다.

[현황]

가평 호씨는 1985년 인구 조사에서 44가구 187명이 조사되었고, 2000년 조사에서는 135가구 463명[남 193명, 여 270명], 2015년 조사에서는 1,494명이 조사되었다. 서울과 경기도에 가장 많이 거주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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