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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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加平 李氏 |
영어공식명칭 | Gapyeong Le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주혁 |
본관 | 가평 - 경기도 가평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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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이인보 |
[정의]
이인보를 시조로 하는 경기도 가평군의 세거 성씨.
[개설]
가평 이씨는 조선시대에 문과와 무과 급제자를 다수 배출하였다. 주요 인물로는 이다림(李多林)과 이다림의 아들인 이윤손(李允孫)·이형손(李亨孫) 형제가 있다. 이다림은 1412년(태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동지중추원사·부총관을 역임하였고, 이윤손은 병조판서를 지냈다. 이형손은 세조의 즉위를 도와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녹훈된 데 이어,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올랐다. 병조참판을 지낸 이장생(李長生), 부호군을 역임한 이명백(李命百) 등도 가평 이씨이다.
1771년(영조 47) 신묘보 족보 편찬 이후 1838년 무술보, 1901년 신축보, 1943년 계미보, 1957년 정유보, 1983년 계해보 편찬이 있었다.
[입향 경위]
가평 이씨 시조는 이인보(李仁輔)로, 신라 때 완산[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호장을 지냈다고 전한다. 『가평이씨세보』에 의하면 이인보의 8세손 이기문(李起文)이 조종현에 이거하면서 본관을 조종으로 하였다고 한다. 조선 태조 때 조종이 가평에 편입된 후 판도판서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이 가평군에 봉해지면서, 이다림을 중시조로 삼고 본관을 조종에서 가평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가평 이씨와 관련하여 다른 설도 존재하는데, 『조선씨족통보』의 경우 이형손(李亨孫)의 8대조이자 호장을 지낸 이진수(李珍守)를 시조로 삼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황]
가평 이씨는 1930년 국세 조사에서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면과 황해도 평산군 안성면에 집성촌이 분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는 1985년에 4,066가구 1만 8,624명이 조사되었으며, 2000년에는 5,109가구 1만 5,815명이 확인되었다. 서울과 경기도에 가장 많이 거주하며, 그다음은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