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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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松靑年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허종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개설]
청송청년회는 설립 초기에는 문화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대 중반에 혁신하여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펼쳤다.
[설립 목적]
1920년대 초반에는 봉건의식을 타파하고 근대 지식을 전파하는 등 문화운동을 펼쳤고,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청년을 포함한 지역민에게 사회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양시키는 목적으로 전환하였다.
[변천]
청송청년회의 창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당시 전국적인 상황을 볼 때 1920년대 초반에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1925년 4월 무렵 회장은 청송군 산업 기수(産業技手)로 있던 윤덕길(尹悳吉)이었다. 1925년 4월 25일 조직의 혁신을 꾀하기 위해 정기총회를 개최하여 강령과 회규를 개정하였다. 또한 명실상부한 청년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회원의 가입 연령을 19세에서 35세까지로 제한하였으며, 민주적인 운영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회장제 중심에서 집행위원제로 전환하였다. 윤횡은(尹澋殷), 윤동욱(尹東旭), 윤주학(尹周鶴), 박윤제(朴允濟), 윤도진(尹燾鎭), 윤자기(尹滋琦), 윤상영(尹商榮), 권위병(權位炳), 윤학수(尹學秀)를 집행위원으로 선출하였고, 윤택진(尹澤鎭), 김창호(金昌鎬)를 검사위원으로 선출하였다.
1927년 2월 12일 청년회관에서 다시 혁신총회를 개최하여 연혁 및 재무 보고를 마친 후 강령과 규약을 제정하고 집행위원을 선출하였다. 1928년 6월 29일 정기총회를 개최하여 경과를 보고하고 임원을 개선하였다. 윤주학을 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하였고, 정송환(鄭松煥)과 박상숙(朴尙淑)은 서무부 집행위원, 윤학수(尹學秀)는 교양부 집행위원으로 선출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설립 초기에는 계몽과 실력 양성을 중심에 둔 문화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0년대 중반 혁신 이후에는 청년의 권익 옹호와 함께 사회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 활동을 펼쳤다. 1927년 12월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진학하지 못한 아동을 대상으로 노동야학을 시작하였다. 강사는 윤학수, 윤용택(尹鏞澤)이었고, 과목은 국문, 산술, 노동에 대한 강화(講話)였다. 또한 직업이 없는 청년의 대책을 논의하고, 지역을 순회하며 강연 활동을 벌였으며, 여성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쳤다.
지역민의 친목을 도모하고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운동대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도 개최하였다. 특히 1925년 4월 친일 단체이자 사교(邪敎)로 규정되어 전국에서 지탄받고 있던 보천교(普天敎)가 청송면[지금의 청송읍]에 정교부(正敎部)를 설립하고 강연회를 열자, 청송노동공제회와 연합하여 ‘보천교 박멸운동’을 벌였다.
[의의와 평가]
청송청년회는 청년운동의 전개와 함께 청송 지역에서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사회운동 상황을 극복하려는 활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