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대리 장일환 가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450
한자 金垈里 - 家屋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인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금대리 장일환 가옥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 지도보기
성격 고가

[정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에 있는 장일환의 가옥.

[개설]

장일환[가명, 1917년 생, 남]은 옛날에 복포사 옆에서 살았다. 1970년대까지도 초가집에서 등잔불을 켰는데, 1980년대에 전기가 들어왔다. 1980년대 말쯤에 지금 집터로 옮겨서 슬레이트 집을 지었다. 그 당시에 2,200만원을 내서 6개월 동안 공사를 하여 완공하였다. 다만 사랑채는 2년 전에 큰아들 집에서 이사올 때 새로 지은 양철집이다.

[형태]

금대리 장일환 가옥은 튼 ‘ㅁ’자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ㄱ’자형 구조였다가 별채를 별도로 만들었다. 이러한 공간 구조는 집이 어떻게 확장되어 가는지 보여준다. 방은 모두 4개가 있다. 하나는 장일환 아들 부부의 방이고 다른 하나는 손녀의 방이고 나머지 하나는 장일환 부부의 방이다. 네번째 방은 지금 사는 사람이 없는데 보통 손님이 오면 여기서 잔다. 사랑채에는 현대식 화장실을 만들었지만 장일환 아들 부부가 사는 집에는 세면실만 있고 화장실이 바깥에 있다. 화장실은 너무 더러워 며느리와 손녀가 몇 번 요구했지만 장일환 씨는 집 안에 만들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장일환 가옥의 생업 공간인 마구간은 아직 그 형태가 처음 집을 지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지된다. 마구간에서 옛날에 소도 길렀지만 손녀와 손자의 등록금을 내기 위해 몇 년 전에 다 팔았다. 지금 마구간에는 소형 정미기 한 대가 보관되어 있다. 마구간에 소가 많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농사를 대부분 기계로하기 때문에 많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화장실과 우물 사이에 닭을 기르는 계사가 있다. 이곳에서 닭을 길렀지만 지금은 한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 우물에서 나오는 물은 약수에 버금갈 정도다. 우물의 물은 마을의 아래에서 지금은 묻혀 버린 우물에 호스를 묻어 끌어 온다. 지금도 외지에 사는 형제들이 집에 오면 이 물을 받아 간다.

장일환 가옥의 안채는 장일환 아들 부부와 부부의 딸[손녀]이 사용한다. 장일환 부부는 별채에 손자와 같이 생활한다. 원래 장일환은 큰 아들과 같이 살았는데 아들이 죽고 나서 다섯째 아들의 집으로 옮겼다. 옮겨 오면서 별채를 따로 지었다. 아들은 부모님을 위해 신식으로 방을 꾸며 주었으며 화장실도 같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현관에서 바로 옆에 있는 방이 안방이다. 장일환의 아들 부부가 사용하고 있다. 옆방은 군청에 다니고 있는 손녀가 사용하는 방이다. 보일러는 안채와 별채 모두 기름 보일러를 사용한다. 기름은 보통 한달에 한번 정도를 넣는다.

[의의와 평가]

가평군 일대의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살림집은 대부분 6·25전쟁 이후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그 이전에도 존재했던 살림집의 형태가 유지되었다. 기본적으로 ‘ㄱ’자형 집이 기본을 이루며, 이것이 확장되어 ‘ㅁ’자형을 보인다. 특히 이러한 ‘ㅁ’자형 집의 경우, 1960년대 이후 경제적인 형편이 그 이전에 비해 좋아지면서 집을 확장한 살림집에서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전기시설이 전체 군에 들어오고, 경제적인 형편이 더욱 좋아지면서 집을 개조하거나, 새로 양옥집을 짓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그이전에 살림집이 지니고 있던 생산 도구의 저장과 창고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살림집은 이제 철저하게 휴식과 수면, 그리고 가족 사이의 교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것은 가평군 사람들의 생활이 일상과 노동으로 구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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