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공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1189
한자 조종안 公所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회

[정의]

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 있었던 천주교 공소,

[개설]

조종안 공소는 1909년 말 사목(司牧) 보고서에 언급되어 있다. ‘조종안’이라는 명칭은 가평군 상면하면에 걸쳐 있는 조종천 변의 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불리어왔다. 처음 천주교 신자가 나온 곳은 가평군 하면 신하리 샛말이라고 한다. 신하리에서 11대째 살아온 전태혁이라는 사람이 포천 막은데미의 파평윤씨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였다. 당시 막은데미에는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을 피해서 서울 명동에서 이주해 온 천주교 신자 이화서와 그의 부인 막달레나가 살고 있었다. 막달레나는 전태혁의 부인과 같이 파평윤씨로, 신앙심이 깊어 의지할 데 없는 고아와 노인을 돌보았다고 한다. 그 무렵에 하면 신하리[현 조종면 신하리]에서 전태혁의 누이 하나가 목매어 자살하는 우환이 생겼다. 이에 전씨 집안은 무당을 통해 굿을 하며 죽은 처녀의 한을 달래려 하였다. 이 때 막달레나는 전태혁의 부인에게 천주교 믿기를 권하여 설득하였고, 전태혁은 이를 받아들여 본명을 요셉으로 하고 입교,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 후 모든 전씨 집안사람들은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입교하여 천주교 교우촌을 이루고 공소 예절을 드렸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조종안 공소는 현재의 현리 본당 모체라고 여겨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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