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548
한자 敬和
영어공식명칭 Gyeonghwa
이칭/별칭 화담(華潭)
분야 종교/불교,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86년연표보기 - 경화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803년 - 경화 화양사에서 출가
활동 시기/일시 1845년 - 경화 봉은사에 조실로 주석
몰년 시기/일시 1848년연표보기 - 경화 사망
학교|수학지 화양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영화사로 107[구의동 9] 영화사
활동지 봉은사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활동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활동지 현등사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길 34[운악리 산163]지도보기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봉은사 조실

[정의]

경기도 가평군 현등사에 승탑이 있는 조선 후기 승려.

[개설]

경화(敬和)[1786~1848]는 편양문파(鞭羊門派)에 속하는 승려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속성은 박씨(朴氏)이다. 호는 화담(華潭)이다.

[활동 사항]

경화는 1803년(순조 3)에 출가하여 양주 화양사(華陽寺)에서 성찬(性讚)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율봉(栗峯)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지탁(知濯)의 법통을 이었다. 29년을 장좌불와(長坐不臥)하였다. 경화는 선종과 교종을 겸수(兼修)하였다. 지리산에서는 서봉두옥(瑞鳳斗玉)에게 『선문염송(禪門拈頌)』과 격외선(格外禪)을 배웠으며, 철원 보개산(寶蓋山) 석대암(石臺庵)에서는 『화엄경』과 『열반경』 등을 연구하였다. 또 유·불·도 삼교일원론(三敎一元論)을 지향하여 유교를 섭렵하기도 하였다. 해인사에서 좌선 중 여래의 본성이 곧 자신의 본성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1815년(순조 15)부터 55곳의 사찰에서 83회의 화엄대회(華嚴大會)를 주관하며 대중 교화에 힘썼다. 1845년(헌종 11)에는 서울 봉은사의 조실(祖實)로 있다가 동래 범어사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말년에 가평 현등사를 열반처로 정하였으며, 제자들에게 정진 수행을 당부하는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경화의 저서로 『천지팔양신주경주(天地八陽神呪經註)』, 『게송육십칠품(偈頌六十七品)』 등이 있다.

[묘소]

경화의 승탑은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 현등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경화의 초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문석 위에 푸른색 방석을 깔고 앉은 자세에 짙은 회색의 장삼과 보라색의 가사를 걸치고 있다. 또 경상 위에는 『화엄경』과 『범망경』이 펼쳐 있으며 안경이 올려져 있다. 초상 상단에는 ′화엄종주 동국율사(華嚴宗主 東國律師)′가 쓰여 있고, 판부사(判府事)를 지낸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제찬(題贊)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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