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450
한자 寶納山戰鬪
영어공식명칭 Battle of Bonab Mountai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주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896년 1월 20일 - 춘천·화천일대 을미의병 봉기
발생|시작 시기/일시 1896년 2월 22일연표보기 - 보납산 전투 발생
발생|시작 장소 보납산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지도보기
종결 장소 보납산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전쟁
관련 인물/단체 이충응|이소응|조인승|신재희

[정의]

1896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보납산에서 전개된 항일 의병 전쟁.

[역사적 배경]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시행되자 전국 각지에서 일본세력과 친일내각을 물리쳐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을 표명하고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토벌대를 파견하여 사전 봉쇄를 기도하여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경과]

가평 인접 지역인 춘천과 화천 등지에서 1896년 1월 20일 의병이 봉기하자, 가평 출신의 신재희(申在喜), 신재욱(申在旭), 이충응(李忠應) 등이 춘천 남면의 이소응(李昭應)을 찾아가 합류하였다. 춘천과 가평 의병을 총괄한 이소응은 ‘격고팔도(檄告八道)’를 공표하면서 국모를 시해하고 군부의 머리를 깎은 처사에 거의(擧義)하였음을 밝혔다. 이어서 국가의 원수를 갚아 치욕을 씻을 것이며 의병을 방해하는 지방관은 응징할 것이라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은 의병의 동향을 파악하고자 조인승(曺寅承)을 춘천관찰사 겸 선유사로 삼아 춘천에 파견하였다. 조인승은 춘천으로 향하는 도중에 가평에 이르러 잠시 읍내에 체류하였다. 당시 춘천을 점령하고 있던 의병들은 가평읍에 있던 조인승을 체포, 춘천으로 압송하여 춘천부 청사 앞 처형장 ‘개못개’에서 총살하였다.

이에 놀란 조정은 춘천과 가평에서 봉기한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1월 31일 진위대 1개 중대를 급파하고, 이어 2개 중대의 지원군까지 증파하였다. 2월 1일 의병 선봉대는 경춘가도의 안보역에 도착하여 관군과의 전투를 준비하였다. 한양으로 향하던 춘천과 가평 의병은 관군이 가평에 주둔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납산(寶納山)에 진을 쳤다. 이충응이 이끄는 가평 의병과 이소응 대장이 주도하는 춘천 의병은 연합하여 관군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으나, 무기 부족과 훈련 부족 등으로 패하고 말았다.

[결과]

치열한 전투였던 만큼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가평 의병은 보납산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고, 1896년 5월 경 관군의 토벌 작전은 곳곳에서 이어졌다. 의병들의 일부는 가평 북면 화악리 일대로로 이동하여 전열을 정비하였다.

[의의와 평가]

의병의 패배로 끝났지만 보납산 전투의 의미를 새기고 당시 순국한 가평 출신 의병장과 의병들의 뜻을 기리고자, 전투지 인근에 안내판을 설치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