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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900007
한자 先史
영어공식명칭 Prehistoric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가평군
시대 선사/석기,선사/청동기,선사/철기
집필자 이헌재

[정의]

인류 등장 이후 문자로 역사 기록을 남기기 이전까지의 경기도 가평군의 역사.

[개설]

가평군은 경기도 동북부 북한강 유역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강원도 화천군·춘천시·홍천군과 서남쪽으로는 경기도 포천시·양주시·양평군과 이어져 있다. 한반도 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가평군은 선사 시대 이래 남북 및 동서 문화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가평군의 선사 유적은 북한강북한강의 지류를 따라 분포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는 인류의 등장으로부터 빙하기가 종식되는 약 1만 년 전 무렵까지 400만 년 이상 지속된 시기이다. 가평군에서 구석기 유물이 채집된 예를 살펴보면, 청평면 청평리 조종천 부근에서 외날찍개가 발견된 적이 있고, 1989년에는 강원대학교 유적 조사단이 청평댐 지역을 조사하면서 석영제 찍개 등 여러 점의 석기를 채집하기도 하였다. 1999년 강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종합 지표 조사에서는 북한강홍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약 1㎞ 하류에 위치한 청평면 고성리에서 찍개, 긁개, 망치 돌을 비롯한 10여 점의 뗀석기를 채집하였다. 이러한 구석기 유물의 발견 사례와 인근 지역인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리, 홍천군 북방면 하화계리, 춘천시 남면 한덕리,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등지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고 있는 점을 볼 때, 가평군에도 구석기 유적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부터 시작하여 청동기 시대가 시작하는 기원전 15~13세기 무렵까지 지속하였다. 신석기 시대에는 빙하기가 끝나고 후빙기가 시작되면서 기온이 2~3°C 상승하였으며, 기온 상승과 맞물려 해수면이 높아지고 관엽수림이 울창해졌다.

가평군 내에서 신석기 유적이 발굴 조사된 예는 없으나 몇몇 유물이 채집되기는 하였다. 철기 시대 유적인 가평읍 마장리 유적에서 횡주어골문이 시문된 빗살무늬 토기 편이 채집되었고, 역시 철기 시대 유적인 북면 이곡리 유적에서 빗살무늬 토기 편이 채집되었다. 이곡리 토기 편에는 저부에 사선문, 몸체부에 횡주어골문이 시문되어 있는데, 한강 하류와 서해안에서 주로 출토되는 형식이다. 이외에 청평면 삼회리의 강안 충적지에서도 빗살무늬 토기 편과 돌도끼가 수습되었고, 대성리역 역사 주변의 청동기 시대 문화층 하층에서도 빗살무늬 토기 편과 노지가 확인되었다. 가평군 내에 신석기 문화가 일반적으로 확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강 유역의 신석기 문화 전기에는 평저 빗살무늬 토기가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유적과 춘천시 교동 유적에서 나타나는데, 동북 지역 신석기 문화와의 관련성이 엿보인다. 이후 중기로 들어오며 한강 유역을 타고 올라오는 전형적인 서해안식 첨저 빗살무늬 토기가 가평군과 춘천시 중도에서 발견되기 시작한다. 후기에는 춘천시 내평리와 중도 등에서 저부 및 몸체부의 무늬가 생략된 첨저 빗살무늬 토기가 나타나고, 어골문만 시문된 토기도 나타나 서해안의 신석기 시대 유적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는 신석기 시대에 이어 등장했으며,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15~13세기 무렵부터 기원전 300년경까지로 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는 민무늬 토기와 간석기가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청동기가 제작되었으며, 정형화된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등장하였다. 또한 농경이 주된 생계 수단으로 자리 잡은 시기이기도 하다.

가평군의 청동기 유적은 1916년 북면 석장리에서 고인돌, 이곡리의 고분에서 돌검이 발견되며 알려졌다. 그리고 마장리 유적과 이곡리 유적에서도 청동기 시대 유물이 확인되었다. 마장리 유적은 대부분 철기 시대에 속하지만, 청동기 문화층에서 민무늬 토기, 돌화살촉, 돌도끼, 반달 돌칼 등이 확인되었다. 이곡리 유적에서도 구멍무늬 토기와 겹아가리 토기를 비롯하여 반달 돌칼, 간 돌 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구멍무늬 토기는 외반된 구순부에 각목을 시문하고 구연부에 침선문을 두 줄 돌려놓았다.

가평군 내에서 본격적인 청동기 유적은 청평면 대성리 유적가평읍 달전리 유적, 상면 연하리 유적이 발굴 조사되면서 확인되었다. 대성리 유적에서는 장방형 집자리 27기, 원형 구덩이 6기, 경작 유구 1개소가 확인되었다. 마을은 3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제1 구역에서는 방형과 장방형 집자리가 확인되는데, 석상위석식(石床圍石式)[주위에 돌을 돌리고 바닥에 판석을 깐 형식] 노지를 한쪽 벽에 치우치게 설치하였다. 유물로는 겹아가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다음으로 제2 구역에는 무시설식 노지를 중심축 선상에 설치한 장방형과 방형 집자리가 분포한다. 유물로는 구멍무늬 토기와 이단경식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마지막으로 제3 구역은 이색 점토 구역이 확인되는 세장방형 주거지 구역이며, 구멍무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달전리 유적에서는 세장방형 집자리 34기, 원형 1기, 성격 미상 유구 6기가 조사되었다. 집자리 내부는 이색 점토 다짐으로 바닥을 처리하였고, 돌두름식 노지와 무시설식 노지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간석기, 타원형 토제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연하리 유적에서는 충적 대지에 조성한 청동기 시대 집자리 3기가 확인되었는데 집자리의 증축, 재사용 흔적이 발견되었다. 출토 유물은 마디모양 덧띠무늬 토기를 포함하여 저장용 항아리, 긴 목 항아리 등 민무늬 토기류와 돌화살촉, 가락바퀴, 돌 끌 등의 석기류 및 토제 그물추 등 100여 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초기 철기 시대]

청동기 시대에 이어 기원전 4~3세기경이 되면 중국 철기 문화의 영향으로 한반도 남부에 초기 철기 시대가 시작된다. 중국 동북 지역에 자리 잡았던 연(燕)나라의 영향으로 주조 철기가 보급되고, 덧띠 토기, 좁은 놋단검, 돌무지 덧널무덤 등과 같은 새로운 문화가 유행하는 시기이다. 시기적으로는 청동기 시대가 막을 내리는 기원전 4세기 말~3세기 초에서부터 초기 국가 시대가 시작되는 기원전 1세기까지로 설정할 수 있다.

가평군 내에서 조사된 초기 철기 시대 유적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은 마장리 유적이다. 마장리 유적은 6·25전쟁 중에 미군이 주둔하던 야영지에서 발견되었는데, 민무늬 토기와 김해식 토기, 석기, 철기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수혈 집자리에서는 사철을 녹여서 선철을 생산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마장리 유적에서 상류 쪽으로 약 2.5㎞ 떨어진 곳에 있는 이곡리 유적에도 초기 철기 시대 문화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외에 가평역 역사 부지와 대성리 유적에서도 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와 원형 유구가 나왔고, 화분형 토기가 출토되는 움무덤이 조사되었다. 가평군의 이러한 초기 철기 문화는 서북한 지역의 문화가 한강 유역으로 유입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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