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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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祖 |
이칭/별칭 | 이종(李倧),화백(和伯),송창(松窓),헌문열무명숙순효(憲文烈武明肅純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상배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사평원과 역삼동을 거쳐 이괄의 난을 피했던 조선 시대 제16대 왕.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종(李倧), 자는 화백(和伯), 호는 송창(松窓)이다. 선조의 손자로 정원군(定遠君)[元宗]의 아들이며, 조선의 16대 왕이다. 어머니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인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妃)는 한준겸(韓浚謙)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이고, 계비(繼妃)는 조창원(趙昌遠)의 딸 장렬왕후(莊烈王后)이다. 어려서 외가인 구사맹의 집 태화정(太華亭)에서 자랐다. 1595년(선조 28)에 출생하여 1649년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綾陽都正)에 봉해졌다가 뒤에 능양군(綾陽君)으로 진봉되었다. 1623년(인조 1) 김류(金瑬)·김자점(金自點) 등 서인의 주도로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 왕위에 올랐다. 1624년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켜 서울까지 침입하자 인조는 밤에 도성을 빠져 나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한강 나루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사평원(沙坪院)에 머물러 의의죽으로 요기를 하고 떠났다.
또한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양재역 일대는 말죽거리라고 불리는데 인조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인조가 이괄의 난 때 한강을 건너 신사동의 새말나루터에 도착했을 때 목이 말라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곳에 살던 유생 김이(金怡) 등 6~7명이 급히 팥죽을 쑤어 인조에게 바치자 인조는 이 죽을 다 마시고 과천을 거쳐 공주까지 피난갔다는 것이다.
인조는 대외적으로 친명(親明)정책을 펴 만주에서 새로 일어난 금나라와 갈등을 일으켰고, 그 결과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강화도로 천도하고, 후금과 형제의 의를 맺고 강화하였다. 이후 청(淸)으로 나라 이름을 고친 후금이 1636년에는 조선을 침략하는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이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항전하였지만 패하여 1637년 청나라에 항복하였다.
인조는 대내적으로 다양한 개혁 정치를 추진하였다. 대표적으로 대동법을 확대 실시하였으며, 1624년 총융청(摠戎廳)과 수어청(守禦廳)을 새로 설치하여 조선 후기 군사제도의 근간인 5군영체제의 틀을 마련하였다. 1633년에는 상평청을 설치하여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조하였으며, 여진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국경지대인 중강(中江)·회령(會寧)·경흥(慶興) 등지에 개시(開市)하여 민간 무역을 공인하였다.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동사보편(東史補編)』, 『서연비람(書筵備覽)』 등의 서적을 간행하였다.
[묘소]
능은 장릉(長陵)으로 경기도 파주시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헌문열무명숙순효(憲文烈武明肅純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