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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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
집필자 | 이우태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이 속했던 삼한 시대의 정치연맹체.
[개설]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 경 한강(漢江) 유역으로부터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여러 정치 집단의 통칭이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마한 지역에 위치한 54개 소국(小國)의 명칭이 열기되어 있는데, 큰 것은 1만여 가(家), 작은 것은 수천 가였다고 한다.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 작은 나라의 지배자는 ‘읍차(邑借)’라고 하였다. 3세기 전반 마한소국연맹체의 맹주는 목지국(目支國)[月支國이라고도 함]의 진왕(辰王)이었다.
[형성 및 변천]
마한 지역인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는 경상도 지역에 비하여 청동기 유물이 풍부하게 출토되는데, 이는 청동기 시대의 선진적인 정치 집단이 이 지역에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증거로 보인다. 이러한 고고학 자료를 통해 볼 때 마한 지역의 소국들은 서기전 3~2세기 무렵 세형동검문화(細形銅劍文化)를 갖고 등장한 많은 정치 집단들이 성장 발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서기전 2세기 경에 이미 대외적으로 통일된 기능을 발휘하는 세력이 형성되어, 한(漢)과 원거리 통교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결속력은 아직 미약하여 마한 전역을 포괄하는 강력한 연맹체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듯하다. 단지 충청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일정 범위 내의 정치 집단들이 결속되어 마한 지역의 주도세력 역할을 하였다고 추정된다.
이들은 철기가 유입되기 이전에는 청동기의 제작과 교역을 통하여 한반도 중남부 각지의 세력집단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서기전 1세기 이후 고조선 유민의 남하와 한군현(漢郡縣)을 통한 철기문화의 확산으로 경상도 지역 특히 낙동강 하류 지역이 새로운 교역의 중심체로 등장하면서, 청동기 중심의 마한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온조(溫祚) 집단의 한강 유역 이주를 계기로 마한 소국 연맹체 내부의 결속력은 급격히 약화되어 점차 백제에게 흡수 통합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백제는 주위의 소국들을 병합하여 3세기 중반 이후에는 세력 범위를 한강 유역으로부터 충청남도 지역까지 확대하면서 목지국의 진왕을 대신하여 독자적인 세력권을 확립하게 된다.
이후 백제는 마한의 주도세력으로서, 3세기 중반 대방군(帶方郡) 기리영(崎離營)을 공격하여 태수(太守) 궁준(弓遵)을 전사시키거나, 3세기 후반 진(晉) 본국에 마한의 이름으로 사신을 파견하는 등 대외적으로 전개되는 정치·경제적 교섭 과정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백제국의 세력권에 포함되지 않은 남부 지역의 마한 소국들 일부는 4세기 후반 백제 근초고왕에 의하여 병합될 때까지 종래의 기반을 토대로 독자적인 세력권을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