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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에 신도비와 묘가 있는 조선시대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의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여(李璵), 자는 환지(煥之), 호는 명성당(明誠堂)이다. 아버지는 세종이다. 부인은 신자수(申自守)의 딸이다. 1425년(세종 7)에 출생하여 1444년(세종 26)에 사망하였다. 1432년(세종 14) 광평대군으로 봉해지고 1436년에 신자수(申自守)의 딸과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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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었던 조선시대 남태제(南泰齊)의 무덤. 남태제의 시호는 청헌(淸獻),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원진(元鎭)·관보(觀甫)이며, 호는 담정(澹亭)·학야(鶴野)다. 아버지는 공조좌랑 남필명(南弼明), 어머니는 한성판윤 신후재(申厚載)의 딸이다. 1723년(경종 3)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727년(영조 3)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28년 『숙종실록』의 보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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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던 백제 시대 산성. 삼성리 산성은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의 산허리를 둘러싼 삼국 시대의 테뫼식 토성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지형 조건으로 볼 때 광진구에서 영동대교를 건너 왼쪽으로 봉은사 가는 방향에 위치하였으며, 한강과 탄천이 합류되는 요충지에 위치한 낮은 산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테뫼식 토성으로 보인다. 산성의 위치와 지형 조건으로 보아 한강 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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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조선 9대왕 성종과 그의 비 정현왕후(貞顯王后), 11대 왕 중종의 능묘. 성종은 성종 25년(1494) 12월 24일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승하하였다. 연산군 원년(1495) 1월 14일 묘호(廟號)를 성종, 능호를 선릉으로 하고, 이 해 4월 6일 지금의 선릉 자리인 광주부 서면 학당리의 언덕에 예장되었다. 그 35년 후인 중종 25년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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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 동쪽에 조선 후기 홍석보가 지은 정자. 양지말[현재의 압구정동]을 가운데로 서쪽에 압구정이 있었고, 동쪽에 숙종 때 세워진 홍석보(洪錫輔)[1672~1729]의 숙몽정(夙夢亭)과 은행나무가 있었다고 전한다. 숙몽정 역시 한강변 기암절벽 위에 세워져 닥나무가 무성했던 저자도와 삼각산 여러 봉우리까지 한눈에 어우러지는 절경을 이루었다고 하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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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던 조선 전기 권신 한명회의 별서. 압구정(狎鷗亭)은 압구정동 산310 일대인 동호대교 옆 현대아파트 11동 뒤편 72동·74동 일대에 있었으며, 세조 때의 권신인 상당부원군 한명회(韓明澮)[1415~1487]의 별장이었다. ‘압구정’이란 정자의 이름은 한명회의 부탁을 받고 사신으로 온 명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 예겸(倪謙)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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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발굴 당시 역삼동]에 있던 청동기 시대 집자리. 역삼동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한강 유역에 벼농사가 시작된 뒤의 전형적인 집자리 유적이다. 이 유적은 한강 지류의 하나인 양재천변 강남구 도곡동의 표고 90m의 매봉산 구릉 위에 위치한 민무늬 토기 시대의 주거지로 1966년 숭실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이 일대는 표고 100m 내외의 매봉 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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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었던 조선 전기 문신 이승손(李承孫)의 무덤. 이승손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인지(引之)이며, 시호는 성정(成靖)이다. 영천 출신으로 아버지는 이두만(李斗萬)이다. 1417년(태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1420년(세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가 되고, 이조·병조의 정랑을 역임하였다. 1433년 최윤덕(崔閠德)의 종사관으로 이만주(李滿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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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최중(李最中)의 무덤. 이최중[1715~1784]의 자는 인부(仁夫), 호는 위암(韋菴)으로 아버지는 현감 이현응(李顯應)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이유(李濡)이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744년(영조 20) 사마시에 급제한 뒤, 1751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서·홍문관교리·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755년에 『천의소감(闡義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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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 이 서울특별시 강남구를 포함한 조선을 침략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일본군이 수십만 대군으로 한반도 전역을 침략하여 7년간 벌어진 전쟁으로, 급기야 조선·일본·명이 참전한 국제 전쟁이 되었다. 임진왜란의 결과, 일본과 명은 정권이 교체되고, 조선은 예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회질서가 더욱 확고해졌다. 임진왜란으로 국토가 유린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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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의 지방제도는 전국의 행정구역을 8도로 나누어 관찰사를 두고, 그 예하에 부(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도호부(都護府)·군(郡)·현(縣) 등을 설치하여 운영되었다. 일반적으로 군현제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이들 지방장관인 각 수령(守令)들은 행정상 모두 병렬관계를 가지고 관찰사의 관할 아래 있었다. 단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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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 한강 변에 있었던 압구정을 지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이다. 할아버지는 예문관 제학을 지낸 한상질(韓尙質)이며, 아버지는 한기(韓起)이고, 어머니는 예문관 대제학 이적(李逖)의 딸이다. 1415년(태종 15)에 출생하여 1487년에 사망하였다. 두 딸이 왕후가 되었는데 예종의 비인 장순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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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15 광복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1962년 말까지도 오늘날의 강남구 지역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과 대왕면 일부에 속해 있었으며, 농촌지대로서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으나 사회 경제적으로는 일부 의미 있는 변화가 진전되었다. 하나는 6.25 전쟁 중 피난민의 주요 이동 경로이자 피난민 수용소가 마련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