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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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喬梓齋 |
영어공식명칭 | Gyojaeja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 48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소희 |
건립 시기/일시 | 1600년대 - 교재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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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 487 |
성격 | 재실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영양남씨 문중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실.
[개설]
교재재(喬梓齋)는 영양남씨(英陽南氏) 무안재(無安齋) 남근(南瑾)과 백원재(百源齋) 남도요(南道堯) 부자(父子)를 추모하는 재실이다. 남근은 품성이 따뜻하고 순수하며, 마음가짐이 중후하여 스스로 편안함을 편하게 여기지 않고 무안(無安)을 중시하였다. 아들 남도요는 천성이 어질고 효행을 실천하였으며, 행실을 자제하고 떳떳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였다. 스스로 백행(百行)의 근원은 효라 여겨 부모를 섬김에 있어 효성을 다하였다. 식견이 해박하여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이 단서굴(丹書窟)을 노닐며 구경하는 길에 함께 시로 화답하였으며, 송학서원(松鶴書院) 백일장에서 글 재주를 인정하기도 했다.
[위치]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 월매마을의 서남쪽 끝에 교재재가 자리 잡고 있다.
[변천]
1600년대에 남근과 남도요 부자의 강학지소에 건립됐다고 전해지나, 건축 양식으로 볼 때 현재의 교재재 건물은 그 이후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교재재기(喬梓齋記)」에 따르면, "월매동 서쪽 언덕에 옛날 재실이 있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허물어지고 잡초가 무성해지자 후손 기락(基洛) 대에 옛터를 고쳐 새로 재실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재실의 기문은 함안조씨(咸安趙氏) 가문 출신의 조현규(趙顯奎)가 썼다.
[형태]
교재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전면 반 칸 퇴칸에 마루를 깔고 그 뒤로 온돌방을 나란히 배열하였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