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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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應義 |
영어공식명칭 | Lee Eungui |
이칭/별칭 | 의백(宜伯),계변(溪邊)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569년 - 이응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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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6년 - 이응의 팔공산회맹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597년 - 이응의 화왕산성 수성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592년~1598년 - 임진왜란 |
거주|이주지 | 경상도 진보현 상리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
활동지 | 팔공산 - 대구광역시 동구 |
활동지 | 화왕산성 - 경상남도 창녕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의백(宜伯), 호는 계변(溪邊). 아버지는 강예습독관(講隷習讀官)을 지낸 이영무(李英茂)이다. 형 이응인(李應仁)이 무과 급제 후 판관(判官)을 지냈다.
[활동 사항]
이응의(李應義)[1569~?]는 경상도 진보현 상리(上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거주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에 가담하였는데, 1596년(선조 29) 3월 대구의 팔공산회맹(八公山會盟)에 참여해 일본군을 물리쳤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에 들어가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일본군을 방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