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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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邱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감병훈 |
[정의]
19세기 김정호가 제작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이 실려 있는 조선 전도.
[개설]
『청구도(靑邱圖)』는 김정호(金正浩)[?~1866]가 만든 대지도로 채색 필사본과 흑색 필사본으로 제작되었으며, 건(乾)과 곤(坤) 두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구도』는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를 저본으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최초 제작 연대는 최한기(崔漢綺)의 「청구도제(靑邱圖題)」를 볼 때 1834년이 거의 확실하지만 『청구도』가 이때 한 부만 만들어졌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현재 국내외에 전해지는『청구도』는 총 17본으로 대개 4개의 이본으로 나누어진다.
본 지도책의 범례는 건치 연혁을 비롯하여 호구·전결·곡총·군정·고적(古蹟) 등에 이르기까지 총 38개의 항목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그 중에서 약 1/3에 해당하는 내용을 주기(註記)하고 있다. 축적이 1:216,000에 해당하는 대지도로, 건곤 두 책을 상하로 연결시키면 전국도가 된다. 훗날 김정호는『청구도』에서 미흡했던 점들을 개정하여『동여도(東輿圖)』와『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제작하였다. 2008년 12월 22일에 보물 제1594-1호, 제1594-2호, 2009년 4월 22일에 제1594-3호로 총 3책이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각각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영남대학교도서관, 고려대학교도서관 등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지도책의 앞머리에는 최한기(崔漢綺)의 서문이 있는데, 그는 자신이 김정호의 친구라고 소개하며 김정호가『청구도』를 어떻게 제작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이 만든 범례를 수록하였는데『청구도』의 제작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 수입한『기하원본(幾河原本)』에서 배워온 확대 축소법을 그림으로 나타내어 설명하면서『청구도』가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제작했음을 밝혔다. 따라서 여러 가지의 제작 이유 중에 학술적인 측면에서 지도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청구도』는 현존하는 전국 지도로서 가장 크며, 축척이 약 1:216,000에 해당하는 지도이다. 지도의 크기는 세로 870㎝, 가로 462㎝이다. 책의 구성은 남북으로 총 29개의 층으로 구성되었고, 동서로는 22개의 판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층판의 면은 남북 100리[약 40㎞]와 동서 70리[약 28㎞]의 같은 크기로 나누어져 있다.
책의 크기는 세로 31.5㎝, 가로 21.5㎝이다. 이 중에서 제26층과 제27층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건책에는 홀수층으로 편성되어 있고, 곤책에는 짝수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책의 맨 앞에는 1834년(순조 34)에 최한기가 쓴 서문인 「청구도제」가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청구도』의 이본인 『청구요람(靑邱要覽)』에 수록된 김정호의 청구도 범례(靑邱圖凡例)는 들어 있지 않다. 오히려 청구도 범례는 본 지도책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
[구성/내용]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는 3권의 19층 8판과 7판에 수록되어 있으나 조선의 전도(全圖)이기 때문에 내용이 간략하게 표기되어 있다. 청송도호부를 살펴보면 먼저 읍치는 백색 바탕에 흑색 테두리를 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표시하여 방광산(放光山)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읍치 밑으로 남천(南川)이 흘러 지나가고 산맥은 ‘∧’ 형 모양으로 연결하여 그렸으며, 방광산과 종산(宗山), 안산(安山)이 연결되어 읍치를 감싸고 있다. 도로망은 굵은 적색의 실선으로 나타냈으며, 진보와 안동, 영덕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면(面)과 역(驛), 창고 등은 글자로 표기하였다.
진보현을 보면 읍치는 백색 바탕에 흑색 테두리를 친 원형 모양으로 그렸고, 도로망은 붉은 적색으로 읍치를 기준으로 두고 표시했다. 산맥은 ‘∧’ 형 모양의 흑색으로 나타냈고, 각 군현과의 경계 표시는 산줄기 옆에 흑색 점을 찍어 표현했다. 하천은 흑색 실선 위에 청색을 채색하여 그렸는데, 읍치 바로 위로 신한천(神漢川)이 지나간다. 나머지 면과 역, 창고, 사찰 등도 지도에 글자로 표기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구도』는 현존하는 전통 시대 전국 지도 중에서 가장 크며, 축척이 1:216,000에 해당한다. 또한 이전까지의 어느 지도보다도 정밀하며 과학적으로 제작되었다. 『청구도』에서는 군현의 경계를 확실하게 하였고, 월경지(越境地)와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지방 행정단위 간에 경계선의 굴곡이 심하여, 영역이 서로 얽혀 있는 형태로 행정 경계가 편성된 지역]를 표시하여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실용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지도를 편람하기 쉽도록 책첩(冊帖)으로 제작되어 휴대성과 활용적인 면이 크다. 이처럼 『청구도』는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활용되는 방안이 상당하기 때문에 문화적·학술적인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아울러 조선 후기 청송 지역과 다른 고을과의 경계 및 교통 사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