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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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栢湖書堂 |
영어공식명칭 | BaekhoSeod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세장리 47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난아 |
건립 시기/일시 | 1757년 - 백호서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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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89년 - 백호서당 현 위치로 이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62년(영조 38) - 백호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2년 - 백호서당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12월 11일 - 백호서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1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백호서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세장리 477 |
성격 | 서당 건축 |
양식 | 이익공 양식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5칸 |
관리자 | 백호서당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세장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당.
[개설]
진보면 세장리에 위치한 백호서당(栢湖書堂)은 이휘일(李徽逸)[1619~1672]의 유업(遺業)을 기리기 위하여, 1757년(영조 33)에 건립된 서당이다. 이휘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문(翼文), 호는 존재(存齋)이다. 외할아버지 장흥효(張興孝)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퇴계학파의 적통을 계승하였다.
[위치]
백호서당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세장리의 백호동마을 북쪽 끝에 있다.
[변천]
백호서당이 위치한 진보면 일대는 조선시대 때는 진보현(眞寶縣)이었다. 또한 백호서당의 터는 일찍이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진보현을 방문했을 때 머물던 장소였다. 이후 퇴계학파의 적통을 계승한 이휘일의 유업을 기리고자, 당시 진보현감(眞寶縣監)이었던 조명협(曺命協)의 발의(發議)로 1757년 퇴계가 머물던 장소에 백호서당을 건립하였다. 이어 1762년(영조 38) 한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다.
1928년 화재로 백호서당의 우물마루 상부와 원주 하단부가 일부 소실되었으며, 1960년 사라호 태풍 때 침수로 벽체 및 일부가 유실되어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다 임하댐 건설로 원래 위치가 수몰되자, 1989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형태]
백호서당은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자연석을 가공하지 않고 주춧돌로 사용한 돌]를 놓고 그 위에 원주를 세운 정면 4칸, 측면 2.5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기와집이다. 평면 구성은 가운데 2칸에 우물마루를 놓고 좌우로 2칸 온돌방을 배치하고 전면으로 반 칸 규모의 툇간을 설치하고 계자난간으로 치장하여 누 형식을 띠고 있다. 상부 가구는 5량가(五樑架)로 결구한 이익공 구조이다.
[현황]
백호서당은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건물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