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449
한자 月幕里碑石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251-1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조선 후기~개항기 - 월막리 비석군 건립
이전 시기/일시 2011년 - 월막리 비석군 청송향교에서 소헌공원 내로 이전
현 소재지 월막리 비석군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73[월막리 381-4] 소헌공원지도보기
원소재지 월막리 비석군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 259-30[월막리 251-1] 청송향교지도보기
성격 비석
관련 인물 부사 이후석|부사 박사한|부사 홍중구|부사 남중희|부사 윤형기|부사 임태수|관찰사 이기연|군수 오형근|부사 신관조|군수 장승원
재질 석재
크기(높이, 너비, 두께) 부사이후후석거사비 120㎝[세로]|48㎝[가로]|11㎝[두께], 부사박공사한청덕선정비 150㎝[세로]|52㎝[가로]|19㎝[두께], 부사홍공중구선정애민비 140㎝[세로]|47㎝[가로]|16㎝[두께], 부사남공희중애민선정비 123㎝[세로]|42㎝[가로]|14㎝[두께], 부사윤공현기영세불망비 123㎝[세로]|41㎝[가로]|15㎝[두께], 부사임공태수선정비 138㎝[세로]|46㎝[가로]|10㎝[두께], 관찰사이상국기연영세불망비 101㎝[세로]|41㎝[가로]|17㎝[두께], 군수오후형근청덕선정비 140㎝[세로]|39㎝[가로]|14㎝[두께], 부사신공관조영세불망비 85㎝[세로]|32㎝[가로]|9㎝[두께], 아후장공승원혜정불망비 90㎝[세로]|30㎝[가로]|11㎝[두께]
소유자 청송군
관리자 청송군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소헌공원에 있는 조선 후기 및 개항기 비석군.

[개설]

월막리 비석군청송읍 월막리 소헌공원(昭憲公園)운봉관(雲鳳館) 옆에 있다. 원래 청송향교 서쪽 담장 밖에 있었는데, 2011년 소헌공원이 조성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봉안된 비는 모두 10기(基)이다. 조선 후기 지방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건립 경위]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청송군(靑松郡)의 지방관이나 경상도관찰사 등을 지낸 사람 가운데 선정(善政)을 베푼 자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웠다. 비석 주인의 관직은 관찰사가 1명, 부사 7명, 군수 2명이며, 비석의 종류는 선정비(善政碑)가 6기,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4기이다.

개별 비석의 건립 연도는 부사박공사한청덕선정비(府使朴公師漢淸德善政碑) 1732년, 부사홍공중구선정애민비(府使洪公重耈善政愛民碑) 1736년, 부사남공희중애민선정비(府使南公羲重愛民善政碑) 1863년, 부사윤공현기영세불망비(府使尹公顯岐永世不忘碑) 1871년, 부사임공태수선정비(府使林公泰洙善政碑) 1849년, 관찰사이상국기연영세불망비(觀察使李相國紀淵永世不忘碑) 1862년, 군수오후형근청덕선정비(郡守吳候衡根淸德善政碑) 1898년, 부사신공관조영세불망비(府使申公觀朝永世不忘碑) 1894년, 아후장공승원혜정불망비(我候張公承遠惠政不忘碑) 1899년인데, 부사이후후석거사비(府使李候後奭去思碑)는 건립 연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후석의 재임 기간이 1649년 9월에서 1654년 7월까지인 점으로 보아 10기의 비석 가운데 가장 먼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월막리 비석군소헌공원 내 청송군 객사인 운봉관 오른쪽 옆 잔디밭에 나란히 위치해 있다.

[형태]

월막리 비석군 10기의 비석 가운데 7기는 개석(蓋石)이 있고, 3기는 없다. 개석이 있는 7기 가운데 3기는 지붕형 개석이다. 대좌(臺座)는 10기 모두 없고, 비신(碑身)을 그냥 땅속에 묻은 형태이다. 개별 비석의 세로×가로×두께 크기는 부사이후후석거사비 120㎝×48㎝×11㎝, 부사박공사한청덕선정비 150㎝×52㎝×19㎝, 부사홍공중구선정애민비 140㎝×47㎝×16㎝, 부사남공희중애민선정비 123×㎝42㎝×14㎝, 부사윤공현기영세불망비 123㎝×41㎝×15㎝, 부사임공태수선정비 138㎝×46㎝×10㎝, 관찰사이상국기연영세불망비 101㎝×41㎝×17㎝, 군수오후형근청덕선정비 140㎝×39㎝×14㎝, 부사신공관조영세불망비 85㎝×32㎝×9㎝, 아후장공승원혜정불망비 90㎝×30㎝×11㎝이다.

[현황]

비석 가운데 대좌도 없이 그냥 땅속에 비신을 묻은 것이 있으며, 비석도 재임 순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정비가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비석 주인인 지방관의 치적이 매우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교량을 신축하였거나 관아 중수, 재정 지원, 조세 공평, 청렴, 애민 등인데 조선 후기 지방 통치의 일면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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