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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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生里雙巖寺址 |
이칭/별칭 | 남산 절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 산55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박병선 |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 산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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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절터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개설]
송생리 쌍암사지(松生里雙巖寺址)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후기에 폐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쌍암사의 절터이다. 송생리 쌍암사지는 원송생마을의 북동쪽에 있는 청송읍 송생리와 주왕산면 하의리의 경계가 되는 능선에 있으며, 주위에 송생리 고분군과 하의리 산성 등이 남아 있다.
[변천]
쌍암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무신 집권기 무신정권에 반발하던 송생현 쌍암사 승려들이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에 경주적(慶州賊) 좌도사(左道使) 최광의(崔匡義)[생몰년 미상]가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하고, 정부에서는 반란을 일으킨 쌍암사 승려들을 붙잡아 섬으로 귀양을 보내게 하였다. 이때의 사건으로 쌍암사는 크게 쇠락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청송도호부」 ‘고적조(古蹟條)’에 쌍암사는 송생현(松生縣)의 동쪽에 있다고 하였으며, 송생폐현(松生廢縣)은 청송도호부의 동쪽 1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16세기까지는 사세(寺勢)가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영남일기(嶺南日記)』, 『여지도서(輿地圖書)』, 『청송부읍지(靑松府邑誌)』, 『범우고(梵宇攷)』 등 18세기에 출간된 각종 읍지류에는 쌍암사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볼 때 16세기 중반 이후 어느 시점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
송생리 쌍암사지는 청송읍 청운리에서 지방도914호선을 따라 동남쪽으로 청송민속박물관과 송생삼거리를 지나면 좌측으로 송생리 마을회관이 나타나는데, 송생리 마을회관에서 북동쪽으로 약 420m 떨어진 산 능선의 중턱에 있다.
[현황]
쌍암사지 주변에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고, 불상의 대좌(臺座)로 추정되는 석재가 민묘(民墓)의 면석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절터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마을 사람들은 쌍암사가 있던 곳을 ‘남산 절골’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현재는 길이 없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송이 채취 시기에는 입산 금지로 통제하여 들어갈 수가 없다.